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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도덕적인 질서의 원천’, ‘공자’(기원전 551~479년)philosophy/the ancient world 2022. 5. 22. 18:30반응형
‘하늘은 도덕적인 질서의 원천’, ‘공자’(기원전 551~479년)
중국 춘추시대 말기의 대 사상가, 교육자, 유교의 개조(開祖)이자 예수, 석가모니(참조: https://sikguy.tistory.com/6), 소크라테스와 함께 세계 4대 성인으로 추앙받는 공자는 노나라의 추읍(지금의 산동성 곡부현)이라는 곳에서 기원전 551년(552년이라고 보는 기록도 있다)경에 태어났다. 본명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이며(공부자 혹은 공자라는 칭호는 후에 불려진 것으로, 공(孔)은 성이고 자(子)는 남자의 미칭(美稱)으로 '선생' 의 뜻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숙량흘(叔梁紇), 어머니의 이름은 안징재(顔徵在)였다. 60세가 넘은 나이의 숙량흘이 젊은 안징재와의 사이에서 그를 낳았다고 전해진다.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어렸을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말단 관리로 일했다는 사실 이외에 공자의 생애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공자는 말단 벼슬아치로 서기 같은 일을 하면서 학문 뿐만 아니라 음악, 궁술과 같은 기예를 익혔고, 또 창고지기나 목장관리직처럼 비교적 사회적 신분이 낮은 직책을 맡기도 했다고 한다.
학문에 정진한 뒤 주나라의 관리가 되기도 했던 공자는 통치자들에 대한 그의 제안이 무시되자 관직을 그만두고 가르치는 일에 집중했다고 한다. 그의 가르침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는 ‘논어’인데, 그것은 그의 제자들이 그의 글과 금언들을 모아 편찬한 일종의 단편집 형식의 글 무리들이다.
‘논어’는 훌륭한 정부를 위한 일종의 지침서라 할 수 있다. 주로 경구와 일화로 구성되어 있는 이 문집에서 그는 그 유명한 ‘군자’라는 개념을 등장시켰다. 덕망이 높은 훌륭한 남자를 지칭하는 이 군자의 조건으로 그는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뿐 그 밖의 것은 바라지 않는’ 점을 꼽았다. 그의 보수적인 성향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천성적으로 보수적인 사람이었고, 초기 중국의 많은 철학자들과는 달리 영감을 얻기 위해 과거로 눈을 돌렸던 사람이었다. 종교의례와 조상숭배에 관해 큰 경의를 품고 있었던 그는 덕을 실천하는 방법들을 분명히 나타내기 위해 충忠, 효孝, 예禮, 서恕라는 전통적인 중국의 가치관에 의존해야 한다고 믿었다. 바로 여기서 그 유명한 삼강오륜의 유교사상이 탄생되었다.(공자가 만든 것이 아니라 한나라 대에 들어와서야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설도 있다)
삼강오륜은 삼강과 오륜으로 구분이 되는데 삼강은,
군위신강(君爲臣綱): 임금은 신하의 벼리가 되며,
부위자강(父爲子綱): 아버지는 자식의 벼리가 되며,
부위부강(夫爲婦綱): 지아비는 지어미의 벼리가 되어야 한다.
는 내용이다. 여기서 "벼리"는 ‘그물에 있어서 근본이 되는 굵은 줄을 말하는 것인데,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면 ‘법도(法度)’라고 풀이하거나, 책임자 등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오륜은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을 의미한다.
부자유친(父子有親): 어버이와 자식 사이에는 친함이 있어야 한다.
군신유의(君臣有義):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로움이 있어야 한다.
부부유별(夫婦有別): 부부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한다.
장유유서(長幼有序):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한다.
붕우유신(朋友有信): 벗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즉, 그는 의례와 전통을 잘 지키는 것과 더불어 개인을 공동체와 연결시키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가 최고의 인간형으로 상정한 군자는 덕과 학식을 갖추었으며 또한 훌륭한 예의를 지닌 사람이었다. 안다는 것은 스스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진정한 지혜라고 말했던 그는 사회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깨달음으로써 개인은 누구나 덕을 갖춘 군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사회’란 모범을 통해 변화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성실하면 형태가 나타나고, 형태가 나타나면 뚜렷해지고, 뚜렷해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움직이고, 움직이면 바뀌게 되고, 바뀌게 되면 다른 사람을 교화시킬 수 있다. 오로지 천하의 성실함만이 능히 교화시킬 수 있다.”
즉, 개인의 ‘자기성찰’과 ‘노력’을 통해 사회는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충심과 성실은 전통의례와 의식에서 나타나고, 전통의례와 의식에서 충심과 설실을 통해 덕이 나타나며, 그렇게 덕이 세상에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면 사람들이 덕을 주목하고, 사람들은 결국 덕을 통해 교화된다고 믿었던 공자, 그는 그렇게 충심과 성실은 변화의 힘을 지닌다고 믿었다.
그리스의 탈레스(참고:https://sikguy.tistory.com/2)나 피타고라스(참고:https://sikguy.tistory.com/5)같은, 동시대의 다른 철학자들처럼 공자 역시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내려고 했지만 그에게 있어 그 추구의 방향은 어떤 절대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가 공명정대하게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도덕적 가치관을 찾아내기 위함이었다. 즉, 그에게 있어 하늘의 도란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성실로 수행하여 얻어내야 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평생을 교육가로서 나라 곳곳을 돌아다녔던 그는 말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그곳에서도 역시나 후학을 위해 힘을 쏟았는데 그곳에서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며 "나이 열다섯에 학문의 길로 가기를 마음 먹었고, 서른에 이르러 세상에 나의 존재를 알렸으며, 마흔에는 어떤 일에도 미혹됨이 없었고, 쉰에 이르러서는 하늘의 뜻을 모두 알았으며, 예순에는 모든 일에 대해 순리를 알 수 있었고, 일흔에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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