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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자연스럽게 잘 흘러가는 것이 행복이다’(키프로스의 제논,기원전332~265년)philosophy/the ancient world 2022. 6. 28. 16:39반응형
‘삶이 자연스럽게 잘 흘러가는 것이 행복이다’(키프로스의 제논,기원전332~265년)
스토아학파의 창시자이자 ‘키프로스의 제논’ 혹은 ‘키티온의 제논’이라고도 불리우는 고대 철학자 제논(Zeno of Citium)은 기원전 332년 터키 남부의 섬 키프로스에서 태어났다. 무역상의 아들로써 자연스럽게 상인의 길을 걸었던 그가 ‘철학’을 만난 것은 어떤 우연한 사고 덕분이었다고 한다.
그 사고란 항해 도중 배가 난파된 것이었다. 포이케에서 뿔고둥을 배에 싣고 가던 제논은 페이라이에우스 근처에서 풍랑을 만나 배가 난파되고 말았다. 다행히 배는 아테네로 기착했고, 그곳에서 우연히 어느 서점에 들른 그는 그 서점에서 소크라테스에 대해 쓰여진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그는 바로 그곳에서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 두 권을 다 읽었다.
그런 뒤 주인에게 이 책 속에 나오는 분같은 사람들은 대체 어디에서 볼 수 있는 거냐고 물었다. 때마침 크라테스가 서점 앞을 지나가는 걸 본 주인은 뜬금없이 그를 가리키며 저 사람을 따라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서점 주인이 가리킨 크라테스. 그는 당대에 그리스에서 가장 유명했던 키니코스 학파의 철학자였다. 제논은 그 서점 주인의 말대로 했고, 그때부터 그는 크라테스로부터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훗날 제논은 그 시절을 회상하며 "그 때 난파 당한 것은 정말 성공적인 항해였다"고 말했다고 한다.
제논은 크라테스와의 철학 공부에 만족했다. 하지만 크라테스는 견유학파(키니코스학파)였고, 견유학파답게 기행을 많이 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제논은 스승을 창피스러워 하기도 했다고 한다. 반대로 크라테스 역시 그의 그런 점을 고쳐주고 싶어 했다. 그래서 스승 크라테스는 제논에게 렌틸콩으로 만든 죽이 든 사발을 주고 그것을 들고 번화한 케라메이코스 지역을 지나가게 했다. 걸인처럼 멸시하는 시선을 견디도록 훈련을 시킨 것이다. 하지만 그가 결국 창피해서 그것을 덮어 감추는 것을 보고 크라테스는 지팡이로 그 사발을 박살내 버렸고, 그러자 제논의 다리 사이로 렌틸콩 수프가 흘러내리고 말았다. 더욱 더 창피해진 제논은 그대로 달아나고 말았고, 그러자 크라테스는 "왜 달아나는가, 포이니케의 애송이야? 무시무시한 일을 당한 것도 아닌데."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일을 계기로 제논은 검소하고 금욕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외모 역시 키니코스 학파의 학도들처럼 점점 더 여위고 그을린 모습으로 변해갔다. 키니코스 철학은 이렇듯 그의 몸가짐, 외모와 마음가짐까지 변화시켰던 것이다. 아울러 그것이 그의 스토아 철학 형성에 발판이 되어 주었다.
크라테스 이후에, 제논은 스틸포, 변증학자 디오도루스, 필론과 같은 메가라 학파의 철학자들 밑에서 공부를 했고, 또한 크세노크라테스, 폴레몬과 같은 플라톤 학파의 철학자에게도 가르침을 받았지만 역시나 그의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키니코스 즉, 견유학파였다. 그 사상을 바탕으로 제논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상을 떠난 후 가장 주요한 두 개의 학파 중 하나인 스토아학파를 창설하게 되었다.
그는 스토아 학파를 창설한 곳은 아테네였다. 많은 제자들이 그를 따랐는데, 스토아 학파란 말은 그가 페이시아낙스의 채색 주랑에서 거닐며 강의를 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었다. 그의 그런 모습을 보고 나중에 사람들이 주랑(stoa; 스토아)에 있는 학파라고 하여 스토아 학파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제논은 키니코스학파의 제자로 수학하면서 그들의 삶에 대한 진지한 접근방식을 공유할 수 있었고, 바로 그를 통해 형이상학적인 사색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우주는 어떤 최고의 법칙제정자가 정한 자연법칙으로 지배된다고 믿었고, 인간은 그 현실을 변화시킬 힘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 현실로 많은 혜택을 누리는 일 외에도 잔혹함이나 불공평까지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논은 또한 인간은 자유의지를 행사하기 위해 이성적인 영혼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했다. ‘도덕적인 삶’을 추구하도록 강요받기 때문에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활동’에 의해 그런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즉, 그는 인간이 ‘마땅한 것’과 ‘마땅하지 않은 것’을 구분할 이성이 있으며, ‘상황’과 ‘조건’에 따라 얼마든지 이성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어떤 것을 무시할 것인지, 아니면 아무런 통제를 받지 않고 고통이나 쾌락, 가난이나 부유함에 무관심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은 바로 개인에게 달려있으나 그것은 분명한 이성으로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성의 명령에 따른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 ‘자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는 인간이 그렇게 된다면, 삶이 좋든 나쁘든 간에 모든 측면에서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성취하고 우주의 최고 법칙제정자의 규칙에 따라 살 수 있다고 확신했다.
제논의 이런 스토아학파는 그리스 헬레니즘시대 전반에 걸쳐 많은 지지를 얻었다. 세력을 확장한 로마제국에서는 더 많은 추종자들을 이끌어냈고, 6세기에 기독교가 대신할 때까지 계속 번창하여 개인 및 정치 윤리학의 기초가 되었다.
아테네 사람들은 제논을 대단히 존경하여 자신들의 성벽 열쇠를 맡길 뿐만 아니라 황금 왕관과 청동상으로 그를 기릴 정도였다고 한다. 심지어 주변 도시들도 앞다투어 동상을 만들고 자기네 나라 사람이라 주장했다고 한다. 마케도니아의 왕 안티고노스도 그를 스승으로 섬겼으며, 아테네에 갈 때면 언제나 그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고 자신에게 와 달라고 몇 번이나 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제논은 이를 정중히 거절하고 자신의 제자를 보냈다고 한다.
제논은 병없이 건강하게 제자들을 가르치며 평생을 살다가 98세에 생을 마쳤다. 그의 마지막 유언은 "내가 자진해서 간다. 왜 나를 부르고 그러는가?"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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