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y/the age of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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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역사는 모두 계급 투쟁의 역사다.’ -카를 마르크스(서기 1818~1883년)philosophy/the age of revolution 2023. 3. 28. 19:42
‘지금까지의 역사는 모두 계급 투쟁의 역사다.’ -카를 마르크스(서기 1818~1883년) 복잡한 인류 역사를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19세기의 대사상가 카를 마르크스(Karl Marx)는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대표작 [공산당선언]의 제1장 서두에서 그가 주장한 바에 따르면, 역사적 변화는 모두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에서 계속되는 갈등의 결과이며, 이 갈등의 근원은 경제 상태에 있다. 마르크스는 여러 시대에 걸쳐 나타나는 사회 본질의 독특한 핵심을 간파했다고 믿었다. 이전의 역사 접근법에서는 영웅과 지도자 같은 개인의 역할을 중요시하거나 사상의 역할을 강조했지만, 마르크스는 고대의 주인-하인, 중세의 영주-농노, 근대의 고용인-피고용인 등 사이에서 오랫동안 이어져온 집단갈등을 주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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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다스리는 왕이다.’, 존 스튜어트 밀(서기 1806~1873년)philosophy/the age of revolution 2023. 2. 28. 16:56
‘인간은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다스리는 왕이다.’, 존 스튜어트 밀(서기 1806~1873년) 존 스튜어트 밀은 서기 1806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 역사가 제임스 밀은 제러미 벤담과 함께 ‘철학적 급진주의’ 운동을 시작했다. 존은 가정에서 아버지에게 교육 받았는데, 그 만만찮은 교육과정은 겨우 세 살 난 밀에게 그리스어를 가르치는 일로 시작되었다. 다년간 공부에 매진한 밀은 20살 때 신경쇠약을 겪었다. 한편 그러기 전에 그는 대학을 떠나 동인도회사에 들어가서 1857년까지 몸담았다. 그 일로 생계를 유지하며 저술활동을 할 시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만난 여성인권옹호자 해리엇 테일러(Harriet Taylor)는 20년간 밀과 교제한 끝에 그의 아내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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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은 곧 인류학이다’, 루트비히 안드레아스 포이어바흐(서기 1804~1872년)philosophy/the age of revolution 2022. 12. 23. 12:06
‘신학은 곧 인류학이다’, 루트비히 안드레아스 포이어바흐(서기 1804~1872년) 19세기 독일 철학자 루트비히 안드레아스 포이어바흐(Ludwig Andreas Feuerbach)는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 같은 혁명사상가들에게 영감을 준 [그리스도교의 본질Das Wesen des Christentums(1841년)]로 가장 유명하다. 이 책에서는 게오르크 헤겔의 철학사상을 상당부분 수용하지만, 헤겔은 절대정신을 지도적 힘으로 본 반면 포이어바흐는 존재를 설명하려고 우리 경험 너머를 살필 이유를 찾지 못한다. 포이어바흐에게 인간은 절대정신이 구체화된 형태가 아니라 정반대다. 즉 인간이 자신의 갈망과 욕망 때문에 위대한 정신, 신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다. 포이어바흐에 따르면, 인류의 모든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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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기 시야의 한계를 세계의 한계로 믿는다’,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서기 1788~1860년)philosophy/the age of revolution 2022. 12. 22. 18:21
‘인간은 자기 시야의 한계를 세계의 한계로 믿는다’,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서기 1788~1860년) 단치히(Danzig, 지금의 폴란드 그단스크(Gdansk)의 부유한 국제적 가정에서 태어난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아버지처럼 상인이 되리라는 기대를 받았다. 서기 1793년 가족이 함부르크에 정착하기 전에 그는 프랑스와 영국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1805년에 아버지가 죽고나서(자살인 듯하다) 그는 장사 일을 그만두고 대학에 가서 철학과 심리학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그의 성과를 끊임없이 비난하는 어머니와는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했다. 학업을 마친 후 쇼펜하우어는 베를린 대학 강사가 되었다. 바람둥이이자 여성 혐오자라는 평판을 얻기도 했는데, 몇 차례 연애에 빠지기도 했으나 결혼은 하지 않은 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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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역사적 과정이다’, 게오르크 헤겔(서기1770~1831년)philosophy/the age of revolution 2022. 11. 22. 19:48
‘현실은 역사적 과정이다’, 게오르크 헤겔(서기1770~1831년) 서기 1770년 독일 슈투트가르트(Stuttgart)에서 태어난 게오르크 헤겔은 튀빙겐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그곳에서 그는 시인 프리드리히 휠덜린, 철학자 프리드리히 셸링과 만나 친구가 되었다. 그후 몇 년간 가정교사로 일하다 유산을 상속하고서 예나대학의 셸링과 합류했다. 나폴레옹이 예나에 진주하자 헤겔은 어쩔 수 없이 그곳을 떠났는데, 그때 간신히 건진 대표작 [정신현상학] 덕분에 독일 철학계에서 단숨에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자금이 필요했던 그는 신문 편집자가 되었다가 이어서 김나지움(Gymnasium) 교장직을 맡았다. 그후 처음에는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다음에는 명문 베를린대학에서 교수로 임용되었다. 41살의 나이로 마리 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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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보다 덜 철학적인 주제는 없다’, 프리드리히 슐레겔(서기 1772~1829년)philosophy/the age of revolution 2022. 11. 15. 18:09
‘철학보다 덜 철학적인 주제는 없다’, 프리드리히 슐레겔(서기 1772~1829년) 독일의 역사가이자 시인인 프리드리히 슐레겔(Friedrich Schlegel)은 보통 후기 근세철학에 아포리즘(aphorism, 짧고 함축적인 말)의 사용을 도입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798년 그는 철학에 대한 철학적 연구(메타철학)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서양철학이 기능하는 방식은 물론 직선적 논증이 최선의 접근법이라는 가정에도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슐레겔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르네 데카르트의 접근법에 반대하며, 확고한 ‘제1원리’라는 출발점이 있다는 그들의 가정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또 그의 생각에 따르면, 최종적 답변에 도달하기란 불가능한데, 그 까닭은 어떤 논증의 결론이든 끝없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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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어떤 종류의 철학을 선택하는가는 그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에 달려있다’,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서기 1762~1814)philosophy/the age of revolution 2022. 11. 14. 17:42
‘누가 어떤 종류의 철학을 선택하는가는 그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에 달려있다’,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서기 1762~1814)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는 18세기 독일 철학자이자 이마누엘 칸트의 제자였다. 그는 인과적으로 결정된 듯한 세계(모든 사건이 불변의 자연법칙에 따라 이전의 사건 및 조건에서 필연적으로 비롯하는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이 어떻게 해서 자유의지가 있는 도덕적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가를 고찰했다. 이처럼 ‘저기 밖에’ 우리 영향이 미치지 않는 독립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교조주의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계몽기에 득세한 사상이다. 하지만 피히테가 생각하기에 교조주의에서는 도덕적 가치나 선택이 존재할 여지를 전혀 남겨두지 않는다.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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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은 성별이 없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서기 1759~1797년)philosophy/the age of revolution 2022. 11. 14. 16:58
‘정신은 성별이 없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서기 1759~1797년) 기록된 역사의 대부분에서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된 존재로 나왔다. 그러나 18세기에는 이런 서열의 정당성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당시 탁월한 반대 목소리를 낸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영국의 급진주의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stonecraft)였다. 이전의 사상가들은 대부분 성별에 따른 육체적 차이를 근거로 들어 남녀 간의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17세기에는 “지식은 대부분 경험과 교육으로 얻을 수 있다”는 존 로크의 견해 등이 천명됨에 따라 그런 추론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남녀는 뇌와 정신이 근본적으로 비슷하므로 같은 교육을 받을 경우 똑같이 훌륭한 성품과 합리적 사고방식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메리 울스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