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자기 시야의 한계를 세계의 한계로 믿는다’,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서기 1788~1860년)philosophy/the age of revolution 2022. 12. 22. 18:21반응형
‘인간은 자기 시야의 한계를 세계의 한계로 믿는다’,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서기 1788~1860년)
단치히(Danzig, 지금의 폴란드 그단스크(Gdansk)의 부유한 국제적 가정에서 태어난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아버지처럼 상인이 되리라는 기대를 받았다. 서기 1793년 가족이 함부르크에 정착하기 전에 그는 프랑스와 영국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1805년에 아버지가 죽고나서(자살인 듯하다) 그는 장사 일을 그만두고 대학에 가서 철학과 심리학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그의 성과를 끊임없이 비난하는 어머니와는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했다.
학업을 마친 후 쇼펜하우어는 베를린 대학 강사가 되었다. 바람둥이이자 여성 혐오자라는 평판을 얻기도 했는데, 몇 차례 연애에 빠지기도 했으나 결혼은 하지 않은 데다 한번은 어떤 여자를 폭행해 유죄를 선고받기도 했기 때문이다. 1831년에 그는 프랑크푸르트로 이주한 후, 아트만(Atman, 힌두교와 불교에서 말하는 ‘영혼’)과 부츠(Buts, ‘말썽쟁이 요정’을 뜻하는 독일어)라는 푸들을 차례로 키우며 여생을 보냈다.
“내가 생각하는 세계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한정된다. 광대한 우주에 대한 내 관찰의 한계. (내 의지를 포함하는) 광대한 우주의 의지에 대한 내 경험의 한계. 내가 생각하는 세계는 내가 지각한 적 없는 사물도 내가 경험한 적 없는 우주의 의지도 포함하지 않는다. 나는 내 시야의 한계를 세계의 한계로 믿는다.”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19세기 초반 독일 철학계의 주류에 속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우상 이마누엘 칸트에게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했지만, 현실이 근본적으로 비물질로 이루어진다고 믿은 동시대 관념론자들을 무시했다. 그는 특히 관념론자 게오르크 헤겔의 딱딱한 문체와 낙관적 철학을 혐오했다.
칸트의 형이상학을 출발점으로 삼은 쇼펜하우어는 자신만의 세계관을 발전시켜 명쾌한 문학적 언어로 표현해냈다. 그는 세계란 우리가 감각으로 지각하는 것(현상)과 물자체(본체)로 나뉜다는 칸트의 견해를 수용했지만, 현상계와 본체계의 본질을 설명하고 싶어 했다.
칸트에 따르면 우리는 저마다 지각한 바를 토대로 자신만의 세계를 짜 맞추지만, 있는 그대로의 본체계 ‘자체’는 절대 경험하지 못한다. 즉 우리는 모두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가 한정되어 있다. 우리가 지각으로 얻는 지식은 한정된 감각을 통해 얻은 정보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여기에 다음을 덧붙인다. “인간은 자기 시야의 한계를 세계의 한계로 믿는다.” 지식이 우리 경험에 국한된다는 생각은 완전히 새로운 생각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도 “사람은 자신의 경험만 믿는다”라고 말했고, 17세기에 존 로크도 “어느 누구의 지식도 자기 경험을 넘어설 수 없다”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하려고 쇼펜하우어가 제시하는 이유는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칸트의 현상계와 본체계에 대한 해석에서 도출된다. 칸트와 쇼펜하우어의 중요한 차이점은 쇼펜하우어에게 현상계와 본체계란, 별개의 두 현실(세계)이 아니라 다르게 경험되는 같은 세계라는 데 있다. 그것은 ‘의지’와 ‘표상’이라는 두 측면을 갖춘 하나의 세계다. 이는 우리 몸으로 쉽게 증명할 수 있다. 우리는 몸을 두 가지 방식으로 경험한다. 즉 그것을 대상(표상)으로서 지각하는가 하면 내부(의지)에서도 경험한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의지의 작용(내 팔을 올리고 싶은 바람 등)과 그에 따르는 운동은 별개의 두 세계(본체계와 현상계)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경험되는 같은 사건이다. 하나는 내부에서 경험되고, 다른 하나는 외부에서 관찰된다. 자기 외부의 사물을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록 그것의 내적 현실(의지)이 아닌 객관적 표상만을 볼 뿐이지만, 세계 전체는 여전히 외부와 내부에 동시에 존재한다.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기타Bhagavad Gita]를 연구했다. 그 책에서 마차를 모는 크리슈나(Krishna)는 아르주나(Arjuna)에게 “인간은 자기 욕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욕망의 노예다”라고 말한다.”
쇼펜하우어가 ‘의지’라고 표현하는 순수한 기운은 진행방향은 딱히 없으나 현상계의 모든 일을 일으킨다. 칸트와 마찬가지로 그는 공간과 시간이 현상계에 속한다고 믿는다. 즉 그에 따르면, 공간과 시간은 우리 마음속의 개념이지 마음 밖의 사물이 아니다. 따라서 세계의 의지는 시간을 보내지도 인과적·공간적 법칙을 따르지도 않는다. 이 말은 곧 세계의 의지란 시간을 초월하고 분할 불가능하며 우리 개인의 의지 또한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결국 우주의 의지와 개인의 의지는 동일하고, 현상계는 거대한 초시간적·맹목적 의지에 지배되는 셈이다.
“우리 지식과 학습의 기반은 설명할 수 없다.”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여기서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가 드러난다. 헤겔 같은 동시대인들은 의지를 긍정적 힘으로 여기는 반면,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우주의 맹목적 의지에 휘둘린다고 생각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그 의지는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뒤에 숨어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우리는 갈망을 해소하려고 애쓰는 가운데 끊임없이 실망하고 좌절하며 살아가게 된다. 쇼펜하우어가 생각하기에 세계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무의미하며, 행복을 찾으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은 기껏해야 만족감을, 최악의 경우 고통을 얻게 된다. 그는 의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보았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이 비참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비존재가 되거나 적어도 만족을 좇는 의지를 줄이는 것뿐이다. 그는 심미적 관조, 특히 음악으로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음악은 현상계를 표현하려고 애쓰지 않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불교의 열반(욕망과 고통에서 벗어난 초월적 상태) 개념을 상기시킨다. 그 자신도 인정하듯이 그의 사상과 불교의 유사성이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는 동양의 사상가와 종교를 깊이 연구했다.
유일한 우주의지 개념에서 쇼펜하우어는 윤리학을 발전시킨다. 그가 다른 부분에서 염세적, 비관적 기질을 보였음을 고려할 때 이 윤리학은 다소 놀랍기도 하다. 그가 깨달은 바에 따르면, 우리는 자신과 우주가 본질적으로 별개라는 생각이 오해임을 깨달을 경우(개인의 의지와 우주의 의지는 동일하므로) 나머지 사람 및 사물 모두에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럴 경우 도덕적 선이 보편적 동정심에서 생겨날 것이다. 여기서도 쇼펜하우어의 생각은 동양철학의 이상을 반영한다.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기타Bhagavad Gita]를 연구했다. 그 책에서 마차를 모는 크리슈나(Krishna)는 아르주나(Arjuna)에게 “인간은 자기 욕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욕망의 노예다”라고 말한다.”
쇼펜하우어는 당대의 독일 철학자들 대다수에게 무시당했고, 그의 사상은 헤겔사상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실제로 여러 작가와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19세기 말에는 그가 의지에 부여한 중요성이 또다시 철학계의 화두가 되기도 했다. 예컨대 프리드리히 니체도 쇼펜하우어에게 받은 영향을 인정했고, 앙리 베르그송과 미국 실용주의자들 또한 세계를 의지로 본 그의 분석에 신세를 졌다. 하지만 쇼펜하우어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야는 심리학일 것이다. 그 분야에서 기본적 욕구와 욕구불만에 관한 그의 견해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카를 융의 정신분석학 이론에 영향을 미쳤다.
출처:철학의 책, 지식갤러리
반응형'philosophy > the age of revoluti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은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다스리는 왕이다.’, 존 스튜어트 밀(서기 1806~1873년) (0) 2023.02.28 ‘신학은 곧 인류학이다’, 루트비히 안드레아스 포이어바흐(서기 1804~1872년) (0) 2022.12.23 ‘현실은 역사적 과정이다’, 게오르크 헤겔(서기1770~1831년) (0) 2022.11.22 ‘철학보다 덜 철학적인 주제는 없다’, 프리드리히 슐레겔(서기 1772~1829년) (0) 2022.11.15 ‘누가 어떤 종류의 철학을 선택하는가는 그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에 달려있다’,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서기 1762~1814) (0) 2022.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