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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모든 것은 형상의 그림자다(플라톤,기원전427~347년경)’philosophy/the ancient world 2022. 6. 12. 17:06반응형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형상의 그림자다(플라톤,기원전427~347년경)’
플라톤은 기원전 427년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름은 ‘아리스톤’, 어머니 이름은 ‘페릭티오네’였는데, 두 집안 모두 알아주는 명문가 출신이었다고 한다. 특히 어머니 쪽 집안이 화려했는데, 그의 외삼촌인 ‘카르미데스’와5촌 당숙인 ‘크리티아스’는 '30인 정권'의 핵심 인물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시인이자 정치가로 유명한 ‘솔론’이 그 가계에는 포함되어 있었다.
외가 쪽으로만 보면 플라톤은 솔론의 6대손이 되는 셈이었는데, 솔론의 가계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전설이 있었기 때문에 플라톤은 종종 '포세이돈의 후손'이라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당시 아테네의 소문에 따르면, 플라톤의 어머니는 처녀 수태를 하여 플라톤을 낳았다고도 전해진다.
플라톤은 어린시절 학업에 정진함과 동시 레슬링을 배우기도 했다. ‘아르고스’라는 지방 출신의 레슬링 선수 ‘아리스톤’이라는 사람이 그의 스승이었다고 하는데, 체격이 좋은 그에게 스승 아리스톤이 '넓다'는 의미를 지닌 "플라톤"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고, 그는 그 이후부터 할아버지 이름과 똑같은 이름이었던 아리스토클레스라는 이름을 버리고 그 이름을 사용했다고 한다.
실제 레슬링 경기에 참여하기도 했던 플라톤은 그림에도 관심을 두었고, 그 무렵부터 이미 서정시와 비극시를 썼다고 한다.
20세 때 플라톤은 헤라클레이토스 학파의 일원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디오니소스 극장 앞에서 소크라테스가 하는 말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들어갔다고 한다. 여기에는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도 전해진다.플라톤과 조우하기 전날 밤, 소크라테스가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백조 새끼를 무릎 위에 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백조 새끼에게 갑자기 날개깃털이 돋더니 기쁜 듯 고운 소리를 높이 울고 나서 날아가 버리더라는 것이다. 그런 꿈을 꾸고 난 다음 날 플라톤을 만나게 되자 그는 '이 친구가 바로 그 백조로군'하고 말했다고 한다.
플라톤은 젊은 시절에는 정치에 뛰어들고자 하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친척들 덕분에 정치권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정치판에 환멸을 느끼게 되며, 정권 싸움 과정에 자신의 외가 친척인 카르미데스와 크리티아스가 살해당하자 혐오감은 한층 굳어졌다고 한다. 아테네에 민주정이 들어서자 다시 한 번 정치에 욕심을 내기도 했지만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어이없는 이유로 고발당하고, 재판에서 배심원들 투표에 의해 사형을 당하게 되자 정치에는 완전히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고 한다.
스승의 사형이 그에게 미친 영향은 막대했다. 그는 우선 스승에게서 배운 것을 보존하기 위해 스승이 재판을 받았을 때 펼쳤던 변론을 다시 서술해 놓은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저술했다. 이후 소크라테스를 등장인물로 활용한 여러 [대화편]을 저술했는데, 플라톤의 그 [대화편]에는 소크라테스의 사상이 어떤 것이고 플라톤의 독창적인 사상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플라톤이 자신만의 사상을 탐구하고 설명하기 위해 소크라테스의 방법을 활용한 정황이 여러 군데에서 잘 드러나 있다.
이후 그는 [국가]라는 책을 통해 이상적인 도시국가의 미래상을 제시하여 덕의 여러 측면들을 탐구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는 ‘도덕철학’ 외의 주제들과도 씨름했다. 초기 그리스 사상가들처럼 그도 우주의 본질과 근본물질에 의문을 품었고, ‘절대 변하지 않는 것’과 ‘영원한 것’이 ‘변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를 탐구했다.
바로 그런 과정에서 그의 그 유명한 ‘이데아론’이 탄생했다. 그는 우리(인간)의 마음속에는 이데아적 형상의 개념들이 갖추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또, 우리가 살고 있는 환상에 불과한 세상, 즉 감각의 세상에는 이데아적 형상의 불완전한 복사본들이 들어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그가 인용한 것이 그 유명한 ‘동굴의 비유’였다.
동굴의 비유란 이런 것이었다. 이 동굴은 거대한 벽으로 나뉘어져 있는 동굴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우리(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 동굴의 한쪽 벽에 묶인 채 갇혀 있다. 사람들은 그렇게 한쪽 만을 향해 묶여 있기 때문에 오직 자기 앞쪽만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등 뒤쪽 즉, 우리들이 묶여 있는 벽 뒤에는 빛이 있어 우리들의 벽 앞에 그림자를 드리우게 한다. 그 빛과 우리들 사이 즉, 우리가 묶여 있는 벽 뒤쪽으로 가끔 사람들이 걸어다닌다. 그리고 다양한 물체를 떠받칠 수 있는 성벽이 놓여 있다. 그 사람들과 물체들의 그림자가 우리가 바라보는 벽 위에 떠다닌다.
플라톤에 따르면 우리들이 보고 있는 이 그림자들이 바로 우리들이 보고 있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우리들 중 누군가가 묶여있던 몸을 풀고 몸을 돌린다면 그 누군가는 실제 세상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평생 갇혀 살아왔기 때문에 빛 때문에 눈이 부실 뿐만 아니라 혼란스러워지게 된다. 그래서 그 누군가는 다시 고개를 돌려 버리게 된다. 그것을 외면하고 기존에 실체라고 우리가 알고 있던 그림자를 계속 실체라 믿으며 살아가게 된다.
이것이 그가 이데아젹 형상의 ‘그림자’라고 부르는 우리의 세상이었다. 실체가 빛에 의해 동굴 벽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처럼, 그 이미지를 우리가 실체라고 믿는 것처럼 우리의 감각이 물질세계에서 인식하는 모든 것은 실체가 아니라고 그는 주장했던 것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이데아의 세계는 영원하며 불변성을 지닌다. 우리 주변의 물질세계에 있는 모든 것은 그 모형이거나 조금 변형된 것들이다.
그러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그의 이런 형상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물질세계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은 이데아의 세계에 존재하는 완전한 것들의 불완전한 변형물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그런 불완전한 변형물들을 하나의 개념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그의 말대로 이데아의 세계의 완전한 말(horse)의 형태가 세상의 여러 다른 형태의 불완전한 말들을 맏들어 내고 있는 것이라면 이데아 세계의 말의 개념이 우리 안에 정립되어 있어야만 가능하다. 여러 다양한 말들의 개념을 추상화 시켜 우리 스스로 ‘말’이라는 존재에 대한 개념을 형성시켰다고 하는 것이 현대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가장 합리적인 설명이겠지만 그는 그렇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이데아에 대한 ‘선천적인 지식’이 우리들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이 육체와 정신이라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고 믿었다. 우리의 육체는 감각을 소유하고 있고 그 감각을 통해 우리가 물질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반면, 우리의 영혼은 이성을 소유하고 있고 그 이성을 통해 우리가 이데아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들이 말의 특징을 보고 저것이 말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선험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이데아적 관념이 물질세계의 말을 보는 순간 그것을 말이라고 믿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배움이라고 부르는 것은 오직 기억의 과정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플라톤은 불멸성과 영원성을 띤 우리의 영혼은 분명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이데아의 세계에 살았을 것이며, 또한 우리가 죽은 후 그 이데아 세계로 돌아가기를 여전히 갈망한다고 주장했다. 즉, 그는 인간의 영혼이 불사불멸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2022.06.10 - [philosophy/the ancient world] - ‘신들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존재가 아니다’(소크라테스, 기원전469~399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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