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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이 없는 세상은 인간이 없는 세상이다’(아우구스티누스,서기354~430년)
    philosophy/the medieval world 2022. 7. 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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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이 없는 세상은 인간이 없는 세상이다’(아우구스티누스,서기354~430)

    Augustine,AD354~430
    Augustine,AD354~430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그리스어: Αυγουστίνος Ιππώνος), 히포 사람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Hipponensis), 또는 성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히포넨시스(라틴어: Sanctus Aurelius Augustinus Hipponensis)라고도 불리우는 교부 철학자(敎父哲學, patristic philosophy은 교부, 다시 말해 이단에 맞서 교회의 이론을 세운 사람들의 기독교 신학을 바탕으로 하는 철학을 일컫는다)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e)는 서기 354년 북아프리카의 작은 지방도시 타가스테(Thagaste) 에서 이교도 관리인 아버지 파트리키우스(Patricius)와 그리스도인인 어머니 모니카(Monica, 축일 8 27)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의 아버지는 이교도였지만 양육자인 어머니의 뜻에 따라 어린 시절 기독교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세례를 받지는 않았고, 고향과 인근 도시 마다우로스(Madauros, 고대 그리스어: Μαδαύρα고대의 누미디아의 도시 이름으로서 알제리 동북부의 도시. 수카하라스에서 남쪽으로 20km 떨어진 평지에 위치한다.)에서 초등교육을 받은 후,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잠시 학업을 중단하게 되었다. 이후 서기 370, 아들을 수사학자로 출세시키고자 하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먼 이방 도시인 카르타고로 유학을 떠나 대학에 입학, 수사학을 전공했다. 

    어머니 모니카 역시 그가 카르타고에서 기독교도 수사학자가 되기를 바랐지만 유학지에서 그는 키케로의 글 《호르텐시우스 (Hortensius)》를 읽고 철학에 심취하게 된다. 철학에 심취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비상한 머리에 스스로 도취하여 어머니의 바람과는 점점 멀어져 갔고, 그 무렵인 서기 371년에 아버지 파트리키우스가 사망하는 사건도 겪게 된다. 재밌는 것은 이교도였던 아버지 파트리키우스가 점점 방탕해져 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도 기가 막혀서, 죽기 직전 세례성사를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을 겪고도 그는 완전한 기독교도가 되지 못했다. 키케로의 글 《호르텐시우스 (Hortensius)》가 그에게 준 영향은 그토록 지대했던 것이다. 그는 선과 악에 관한 문제의식에 매료되었고, 신이 전적으로 선이고 전능하다면 왜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그에게 일생 일대의 문제인 것처럼 여겨졌다. 10대에 읽은 책 한 권이 한 철학자로 하여금 평생 진리를 탐구하며 살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 의문에 사로잡힌 그는 어렸을 적 어머니 모니카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갔던 경험을 살려 우선 성경책을 손에 집어 들었다. 그러나 그에게 기적과도 같은 변화를 가져다준 키케로나, 그가 주로 읽던 수사학, 철학 책보다 화려함이 떨어지는 성경의 문체에 그는 곧 흥미를 잃고 말았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가 만난 것이 마니교(페르시아어: آیین مانی Āyin e Māni, 영어: Manichaeism,사산 제국의 예언자 마니가 창시한 이란 계통의 종교로, 사산 제국(226~651) 시대의 주요 페르시아 영지주의 종교 가운데 하나이자 현존하지 않는 고대 및 중세 종교. 마니교에서는 선하고 영적인 빛의 세계와 악하고 물질적인 어둠의 세계 사이 투쟁에 관해 설명하는 정교한 우주론을 가르쳤다. 이 우주론에 의하면, 인간의 역사에서는 선과 악 또는 영성과 물질성의 투쟁이 계속하여 발생하는데, 이 과정을 통해 선 또는 영성이 그 대립물인 악 또는 물질성을 극복하게 되며, 이에 따라 빛(영 또는 영혼의 에센스)이 물질 세계에서 점차 철수하게 되고, 마침내 그 자신이 방출되어 나왔던 본디 원천인 빛의 세계(world of light)로 되돌아가게 된다.)였다. 

    선과 악을 우주를 지배하는 힘으로 여기는 마니교가 자신의 질문의 답이나 진리를 가르쳐 줄 수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 그래서 서기 373년 아우구스티누스는 열렬한 마니교도가 되어 마니교의 미학을 다룬 첫 서적을 출판했고, 자신의 많은 친구들을 마니교로 전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점점 철학자들의 말들에 비해 마니교의 가르침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마니교의 교사 파우스투스가 자유학예는 커녕 기본지식이나 간신히 갖추고 있는 인물임을 알고는 실망을 금치 못한 채 결국 마니교를 떠나게 된다. 

    그의 인생에서 변곡점이 된 것은 밀라노의 대주교 암브로시우스(Ambrose)와의 만남이었다. 수사학 교사를 구한다는 전령을 받고 떠난 밀라노에서 우연히 만난 암브로시오 주교의 첫 인상에 그는 큰 감명을 받았고, 그의 강론을 틈나는 대로 경청하게 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가 딱히 처음부터 자신이 추구하는 진정한 진리를 그를 통해 얻고자 함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보다는 어떻게 하면 말을 저렇게 잘 하나를 알아보려고 그에게 관심을 가진 것이었는데 그것이 그의 인생을 바꿔 놓은 일대의 대사건이 된 것이었다. 

    하지만 계기가 어떻게 됐든 그는 암브로시오 주교와 그의 강론 내용에 점점 이끌리게 되었고, 그를 통해 그가 당시 겪고 있던 여러 심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와 함께 살던 고향 친구가 그에게 성 안토니오 아빠스의 극도로 절제된 수도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기독교 수도자로105세의 나이에 선종할 때까지 수도생활에 열중한 성 안토니오 아빠스에 관해 듣게 된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이 쾌락에 빠진 노예처럼 여겨져 한심함에 한탄을 했다고 한다.

    심란한 아우구스티누스가 자택 정원을 거닐며 고민하고 있던 순간, 어디선가 "집어서 읽어라(Tolle, lege)!" 하는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뭐라도 집어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집에 들어와 눈에 있는 책을 집어서 펼쳐봤는데, 그것이 바로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13 13절이었다.

    진탕 먹고 마시고 취하거나 음행과 방종에 빠지거나 분쟁과 시기를 일삼거나 하지 말고 언제나 대낮으로 생각하고 단정하게 살아갑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온몸을 무장하십시오. 그리고 육체의 정욕을 만족시키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마십시오.

    - 로마서(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13 13~14 (공동번역성서)

    성구를 읽은 뒤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충격을 받아 개종을 결심한 아우구스티누스는 386 8월 교수직을 그만두고, 그의 지인들과 카시키아쿰의 별장에서 한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그 뒤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는 암브로시오 주교 밑에서 예비신자 교리를 받게 된다. 이후 이듬해(387) 4 13일에는 친구 알리피오(Alypius, 축일 8 15), 아들 아데오다투스와 더불어 세례를 받게 된다. 이 때가 그의 나이 32세였는데, 15년 동안 동거했던 여인은 그의 회심을 알고 곁을 떠나 역시 회심하여 수녀원에 들어가 남은 인생을 보냈다고 한다.

    기독교에 입문한 뒤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일생을 통해 고민하도록 만든 문제, ‘신이 전적으로 선이고 전능하다면 왜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것일까?’에 대한 해답을 계속 탐구해 나가게 된다. 기독교인들에게 이 같은 질문은 핵심적인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신의 존재에 반대하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결국 찾아낸 그 문제의 해답은 이런 것이었다. 바로 악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의 부족이나 결함으로 생기는 것이라는 것. 하지만 이런 답안은 문제의 완전한 해답이 되지 않는다. 왜 신이 이런 결함이 있는 세상을 창조했어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남기 때문이다. 그 의문에 대한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의 대답은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좀 더 부연하면 신이 인간과 같은 이성적인 존재를 창조하기 위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했는데, 그 자유의지의 발휘를 위해 세상에 결함이 있을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신은 인간에게 본질적인 자유를 부과했는데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므로 그것을 증명하도록 하기 위해 세상에 결함이 있는 악도 함께 존재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나쁜 일을 하도록 선택하는 자유를 비롯해 선택의 자유가 있는 곳에서만 합리성과 같은 이성의 발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왜 선만 있는 세상 대신 이성이 존재하는 악의 세상이 필요한가에 대한 또 다른 대답도 내놓는다. 그것은 바로 악이 존재하는 세상의 선이 악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의 선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 마치 음악의 불협화음이 화음보다 더욱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이 말은 바꿔 말하면 인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악이 존재한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리고 사고를 올곧이 결론에 맞추려는 궤변처럼 들리기도 한다. 실제로 과 같은 철학자는 교부철학의 그런 주장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하면서 그 논리의 약점을 지적했다. 그에게 있어 교부철학에서 병을 일종의 건강의 결핍이라고 보는 것은 일종의 말장난일 뿐이었다. 또한 이런 아전인수식 논리로는 지진이나 역병과 같은 자연의 악에 대한 설명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신을 믿지 않는 누군가는 세상에 악이 존재한다는 것이야 말로 전능하고 자애로운 신이 존재하지 않는 증거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신을 믿는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사람들에게 이런 신정론은 자기 믿음에 대한 지표 위안이 되어 주고 있다.    

     

    2022.06.12 - [philosophy/the ancient world] -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형상의 그림자다(플라톤,기원전427~347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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