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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신은 육체가 아니라 다른 것이다’(아비센나, 서기 980~1037년)
    philosophy/the medieval world 2022. 7. 1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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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은 육체가 아니라 다른 것이다’(아비센나, 서기 980~1037)

    Ibn Sina,AD980~1037
    Ibn Sina,AD980~1037

    중세의 뛰어난 의학자 중 한 사람이자 페르시아 제국의 위대한 철학자로 추앙받는 아비센나(이븐 시나 혹은 푸르 시나라고도 불리운다.)는 서기 980년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부카라(Bukhara) 근처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이미 신동이었던 그는 10세의 나이로 꾸란과 아라비아의 많은 시문들을 외울 정도로 기억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그 후로 그는 논리학과 형이상학을 배웠는데 얼마 가지 않아 논리학과 철학뿐만 아니라 의학에서도 스승을 능가할 정도로 그의 학업 수준은 가히 경이로운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모든 스승들을 뛰어넘고 나자 18세가 될 때까지 아비센나는 몇 년간 혼자 독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천재적인 습득력과 응용능력을 통해 십대에 이미 사만왕조(Samanid)의 통치자 누호 이븐 만수르(Nuh ibn Mansur)가 인정할 정도의 뛰어난 의사로 알려지게 된 아비센나는, 통치자의 허락을 받아 그의 훌륭한 도서관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도서관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받은 덕분으로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던 아비센나는 21세라는 이른 나이에 일찌감치 저술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형이상학, 동물생리학, 고체역학, 아랍어 구문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200여 권 이상의 저서를 계속 펴내게 된다.

    아비센나는 원래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사람이었지만 주로 이슬람세계의 언어인 아랍어로 글을 썼다고 한다. 이후 의사이자 정치 고문관으로 명성을 떨치며 여러 왕자들을 보좌하면서 삶을 보냈던 그는 술탄 마흐무드의 가즈니 왕조 군대가 부와이흐 왕조 영토 각지를 침공했을 때 이스마일파 신도라는 이유로 자신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각지로 피난생활을 시작했고, 1022년에 그를 총애하던 통치자가 죽자 최종적으로 이스파한으로 이주했다. 이후 전쟁 수행 요원이라는 자격으로 후원자 알라 알-다울라(Ala al-Dawla)와 함께 출정을 나갔을 때 병에 걸려 1037년 하마단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에는 많은 의혹이 남아 있는데, 당시 누군가가 악의를 품고 그의 복통 치료약을 바꿔놓았는데, 그것이 그의 죽음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전통 아랍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자이며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아비센나는 아리스토텔레스(참조:https://sikguy.tistory.com/15)의 철학을 정리하여 종합해 놓은 많은 서적을 남겼을 정도로 자신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추종자라 여겼는데, 다른 많은 철학적 관점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을 존중했지만 정신과 육체의 관계에 대한 관점에서는 스승과 생각을 달리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또한 다른 동물들)의 육체와 정신은 두 개의 다른 것들(또는 물질들’)이 아니라 하나의 합일체이고, 정신은 육체의 형상이라고 주장했고, 이런 이유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어떤 것도(정신이든 육체든) 죽음에서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아비센나는 철학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상 중 하나인 이원론을 추종하던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육체와 정신이 두 개의 뚜렷이 구별되는 물질이라고 생각했고, 이런 관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 보단 오히려 정신을 육체에 갇혀있는 별개의 물질로 여겼던 플라톤(참조:https://sikguy.tistory.com/14)을 따르고 있었다. 플라톤의 주장에 따르면, 죽음의 시점에서 정신은 육체라는 감옥에서 풀려나게 되어 이후 또 다른 육체에서 환생한다. 아비센나는 이러한 주장을 따랐던 것이다.

    아비센나는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공중인간(flying man)’이라고 알려진 한 사고실험을 고안하기도 했다. 이 실험은 그의 저서 [치유의 서] 안의 <영혼론>이라는 논문에 등장하는데, 이 사고 실험을 통해 그는 정신이나 자아가 존재한다는 것과 정신이나 자아가 인간의 육체와 별개라는 것을 입증하고 싶어 했다. 

    그 실험은 거짓임을 입증할 수 있는 지식은 모두 벗겨내고 절대적인 진리만 남겨두는 데 그 목적이 있었는데 아비센나는 우리가 사실상 감각을 빼앗기게 되어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감각에 의존할 수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없는지를 시험하고 싶어 했다. 

    아비센나는 다음과 같이 상상해볼 것을 권한다. 나는 방금 생겨났지만 모든 정상적인 지능을 지니고 있다. 또한 눈이 가려지고 공중에 떠있으며 팔다리가 서로 분리되어 있어서 아무것도 만질 수 없다. 그리고 어떤 감각도 완전히 없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감각은 없어졌어도 나는 모든 정상적인 지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라고 하는 이 자아는 무엇인까? 생각만으로 감지해 낸 것이므로 그 자아는 내 육체의 일부일 리가 없다. 육체가 아니므로 내가 존재한다고 단언하는 그 자아는 길이나 폭이나 깊이가 전혀 없다. 그 자아는 확대도 안되고 물질적 특성도 전혀 없다. 

    따라서 인간의 자아(‘나란 존재는 무엇일까?’)는 육체나 물질적인 것과 별개의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공중인간 사고실험은 이렇듯 정신이 육체가 아닌 것, 즉 육체와 별개의 것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아비센나 나름의 방식이었다. 

    아울러 정신이 물질적인 것이 될 수 없음을 입증하기 위한 다른 방법들도 있었다. 그 방법들은 정신으로 이해될 수 있는 지적 지식이라는 것이 물질적인 것에 포함될 수 없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었다. 만약 정신이 물질적이고 형태를 이루는 것이라면 물질적이고 형태를 이루는 감각기관의 일부와 정확히 대응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벽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벽의 이미지는 각막과 수정체에 의해 이미지가 망막에 투영되도록 빛을 굴절시킨다. 또한 홍채는 각막과 수정체 사이에 존재해서 카메라의 조리개처럼 들어오는 빛의 양을 조절한다. 그렇게 들어온 빛이 유리체를 통과해서 최종 망막에 초점이 맞추어지며, 망막에 맺힌 이미지는 시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되어 본 것을 인지하도록 만든다. 물질적인 것이 물질적인 감각에 완전히 대응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비센나에 따르면 정신은 이런 식으로 물질세계에 대응하지 않는다. 정신은 감각기관이 아닌 것이다. 정신이 파악하는 것은 인간은 이성적이면서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 동물이다와 같은 정의들인데 이것을 이해하고 인식하며 새로운 생각이 피어나도록 하는 과정은 물질적인 매커니즘만으론 이해할 수가 없다. 따라서 정신은 육체와 같은 방식이거나 육체의 일부일 리가 없는 것이다. 

    아비센나는 또한 정신은 육체가 죽을 때 파괴되지 않고 불멸성을 지닌다고 주장했다. 이 결론으로 인간, 즉 육체와 정신이 죽은 뒤 부활해 사후를 누린다고 믿는 정통 이슬람교도들은 그의 사고를 더욱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결과 아비센나는 12세기에 위대한 이슬람 신학자 알 가잘리(al-Ghazali)의 비난을 받았다고 전해지는데, 알 가잘리는 아비센나를 사후 환생이라는 이슬람의 핵심교리를 포기한 이단자라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그 시대에 아비센나의 업적은 라틴어로 번역되어 기독교의 철학자와 신학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그들은 아비센나가 해석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가 불멸의 영혼이라는 관념과 쉽게 공존할 수 있는 것을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1640년에 데카르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보다 플라톤의 사상에 더 가까운 이원론에 관심을 돌렸고, 그에 대한 데카르트의 주장은 아비센나의 주장과 매우 흡사했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에 관해 자신이 어쩌면 기만당할 수 있는 어떤 악마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속을 수 없는 유일한 것은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는데, 그 자아는 정확히 아비센나가 다른 지식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을 때 공중인간에서 확인한 바로 그 자아였다. 그 당시 아비센나처럼 데카르트도 라는 자아는 육체와 완전히 별개의 것이고, 또한 분명 불멸의 존재라고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아비센나와 데카르트의 이원론에 대해 매우 강력하게 반대 주장을 펼친 사람은 바로 토마스 아퀴나스였다. 그는 사고하는 자아는 육체에서 감각을 느끼는 자아와 똑같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어떤 선원이 그의 배에 구멍이 난 것을 발견하는 식으로 나는 내 다리에 통증이 있는 것을 그냥 관찰하지는 않는다. 그 통증은 철학에 관한 내 생각이나 내가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에 관한 내 생각들처럼 내게 속해 있는 생각인 것이다. 

    현대 철학자들은 대부분 주로 뇌에 대한 과학지식이 증가했기 때문에 심신이원론(mind-body dualism)을 거부한다. 이성적인 사고의 과정은 아비센나나 데카르트의 시대에는 과학적인 도구로 설명할 수 없었지만 현대 과학은 이제 사고가 뇌의 여러 영역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매우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매우 영향력 있는 20세기 영국의 철학자 길버트 라일은 이원론자의 자아를 기계 안의 유령으로 풍자했는데, 그는 우리가 이런 자아라는 유령에 의존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 인간이 어떻게 인식하고 활동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 사람이었다. 

    오늘날 철학자들은 소수의 이원론자들을 비롯해 정신이 바로 두뇌라고 주장하는 다수의 사상가들, 그리고 사고는 두뇌의 물리적 활동의 결과라는 데 동의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등으로 나뉘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두뇌의 물리적 상태(회백질, 뉴런 등)’ 그곳에서 생기는 사고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많은 철학자들, 특히 유럽대륙의 많은 사상가들은 여전히 아비센나의 사고실험의 결과를 어떤 본질을 꿰뚫은 핵심적인 실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그 사고실험의 결과는 우리 모두가 과학적 이론의 객관적인 관점에 순응하지 않는’ ‘세상의 1인칭 관점을 지닌 자아를 지닌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2022.06.14 - [philosophy/the ancient world] - ‘모든 이해는 감각에서 시작된다(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384~322년)’

    2022.06.12 - [philosophy/the ancient world] -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형상의 그림자다(플라톤,기원전427~347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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