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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에 대해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안셀무스,서기1033~1109)
    philosophy/the medieval world 2022. 7. 17.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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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에 대해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안셀무스,서기1033~1109)

    Anselm, AD1033~1109
    Anselm, AD1033~1109

    신 존재 증명으로 유명한 캔터베리의 안셀무스(St Anselm of Canterbury)는 서기 1033년에 이탈리아의 아오스타(Aosta)에서 귀족 가문인 아버지 곤돌포(Gondulfo)와 어머니 에르멘베르가(Ermenberga)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만큼 클뤼니 수도원을 포함한 프랑스의 유명한 학교들을 방문해서 교육을 받았던 그는 이른 나이인 이십대에 집을 떠나 프랑스의 베크(Bec) 수도원에 들어가게 된다. 거기서 그는 뛰어난 논리학자이자 문법학자인 랜프랭크(Lanfranc)라는 성서 해설자 밑에서 공부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된다. 

    1060년에 베크의 수도자가 된 안셀무스는 1067년에 이 수도원학교의 교장이 되어 제자인 동료 수사들을 위해서 《모놀로기온 프로슬로기온》등 많은 작품을 저술한다. 또한 윤리적, 종교적 교육에 힘씀으로써 베크 수도원학교를 당대 최고의 학교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1078년에 안셀무스는 수도원장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1078년 안셀무스가 베크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을 때, 그의 명성은 이미 프랑스의 경계를 넘어 앵글로-노르만 왕국에까지 다다른 상태였다. 나쁜 건강, 그리고 정치적 기술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안셀무스는 1093년에는 캔터베리의 대주교로 서임되었지만 안셀무스는 이 직무를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에게 심각한 고통을 안겨준 오랜 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영국 노르만 왕조의 왕 윌리엄 2세와 헨리 1세와의 갈등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안셀무스는 왕권에 반대하는 교회를 옹호하려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직자들을 직접 임명하고 교황과의 연락을 제한하는 영국 국왕의 교회직무에 관한 간섭에 대해서 안셀무스는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그는 영국 성직서임권 논쟁의 여파로 1097, 1106년 두 차례나 망명길에 올랐다. 그 동안에 영국 교회를 옹호하고 자신의 면직의 부당성을 변론하려고 노력했고, 교황을 방문하는 한편 안셀무스는 망명 중에도 저술 활동을 멈추지 않아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 《왜 하느님은 사람이 되셨는가》 등 다수의 저작을 남겼다. 안셀무스는 교회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싸우는 한편, 교회를 혁신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결국 헨리 1세와는 극적으로 화해를 한 안셀무스는 말년에 건강이 악화되었음에도 사색과 묵상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76세를 일기로 1109년 성주간 수요일에 캔터베리에서 선종했다. 

    많은 기독교 사상가들처럼 캔터베리의 안셀무스 역시 신이 존재한다는 것 신앙의 문제만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닌, ‘이성적인 논증으로도 신의 존재가 입증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안셀무스(Anselm)가 만들어낸 존재론적 증명(Ontological Argument)’은 그의 업적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참조:https://sikguy.tistory.com/15)의 논리학을 비롯해 플라톤(참조:https://sikguy.tistory.com/14)의 사상, 자신의 천재성 등을 기반으로 11세기 이탈리아 철학자 안셀무스가 만들어낸 존재론적 증명은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거부하는 한 어리석은 자 자신이 논증을 벌이는 상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논증은 첫째 신은 그보다 더 위대한 존재를 상상할 수 없는 가장 완전한 존재이고, 둘째 존재는 비존재보다 월등하다라는 두 가지 명제를 받아들이는 것에 의거하고 있다. 안젤무스에 따르면 논쟁이 끝나갈 때 그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모순적인 태도를 받아들이거나 신이 존재하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안셀무스: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신은 가장 위대한 존재(그보다 위대한 존재를 상상할 수 없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데 동의합니까?

    어리석은 자:.

    안셀무스:그러면 그보다 위대한 존재를 상상할 수 없는 존재가 당신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데 동의합니까?

    어리석은 자:, 마음 속에는 존재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안셀무스:하지만 마음속뿐만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것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에 동의합니까?

    어리석은 자:. 그렇게 생각합니다. 손에 든 아이스크림이 상상할 수 있는 아이스크림보다 더 좋습니다.

    안셀무스:그렇다면 그보다 위대한 존재를 상상할 수 없는 존재가 마음속에만 존재한다면, 그것은 또한 실제로 존재하는 것보다 위대하지 않다는 말이군요.

    어리석은 자:그렇습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신이 더 위대할 것입니다.

    안셀무스:그렇다면 이제 당신은 그보다 위대한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더 위대한 존재가 있다는 말입니까?

    어리석은 자:그것은 말도 안됩니다. 

    안셀무스: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모순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생각에서든 실제에서든 (그보다 위대한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안셀무스 신존재증명은 요컨대 이런 것이었다. 그는 먼저 전제로 하느님을 "그것보다 더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어떤 것"이라고 정의한 뒤 그것보다 더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어떤 것은 실제로 존재해야 한다고 논리를 펼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보다 더 위대한 것을 상상할 수 없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그것보다 더 위대한 것을 상상할 수 없지만 존재하는 것'이 더 위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보다 더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어떤 것이 하느님이라면, 하느님은 그 본성상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이것이 안셀무스의 신 존재증명의 대략적인 논의였다.

    존재론적 증명은 데카르트와 스피노자같은 많은 위대한 철학자들에게 수용되었다. 하지만 한 어리석은 자의 편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안셀무스의 동시대인 마르무티에르의 가우닐로(Gaunilo of Mamoutiers)는 상상할 수 있는 섬보다 더 크고 기막히게 좋은 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같은 논증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고, 18세기에 칸트는 존재를 마치 사물의 속성인 것처럼 다룬다며 그 논증에 반대했다. 이는 마치 재킷을, ‘그것은 푸르고 모직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라고 묘사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존재는 푸르다는 것과 다르다. 만일 재킷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푸르거나 모직으로 된 재킷도 전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정신뿐만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정신에만 존재하는 것보다 더 좋다는 안셀무스의 말은 잘못되었다고 칸트는 주장한다.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증명 1077~1078년에 집필되었지만 1781년 독일 철학자 칸트가 그 명칭을 붙였다. 

     

    2022.06.14 - [philosophy/the ancient world] - ‘모든 이해는 감각에서 시작된다(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384~322년)’

    2022.06.12 - [philosophy/the ancient world] -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형상의 그림자다(플라톤,기원전427~347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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