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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는 철학과 함께 할 수 있다’(아베로에스, 서기1126~1198)
    philosophy/the medieval world 2022. 7. 1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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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는 철학과 함께 할 수 있다’(아베로에스, 서기1126~1198)

    Averroes,AD1126~1198
    Averroes,AD1126~1198

    철학자들은 종교의 율법이 필수적인 정치기술이라고 믿는다.”-아베로에스

     

    아라비아 이름으로는 이븐 루시드(Ibn Roshd) 혹은 이븐 루슈드(Ibn Rushd)라고도 불리우는 아베로에스(Averroes)는 당시 이슬람 문화권이었던 스페인의 코르도바(Cordoba)에서 1126년에 저명한 법조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좋은 가문 출신이었던 만큼 아베로에스는 어린시절부터 다양한 분야에 관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신학, 법학, 의학, 철학 등에 관한 깊은 교양을 쌓은 아베로에스는 의사이자 철학자인 그의 친구 이븐 투파일(Ibn Tufayl)을 통해 통치자 아부 야쿠브 유수프를 소개받았고, 아부 야쿠브는 곧 그를 법관으로 임명했다. 그 뒤 역시나 친구인 이븐 투파일의 추천으로 아베로에스는 왕실 의사로까지 임명된다. 

    아리스토텔레스(참조:https://sikguy.tistory.com/15)에 대한 관심을 아베로에스와 공유했던 통치자 아부 야쿠브는 아베로에스를 매우 높이 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과 같은 문외한들을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든 저서들을 계속해서 해석해줄 것을 아베로에스에게 요청하기도 했고 아베로에스는 통치자의 뜻을 저버리지 않았다. 아베로에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다수 작품들, [논리학] [영혼에 관하여] [자연학] [형이상학] [수사학] [시학] [니코마코스윤리학] [동물의 신체기관에 관하여] [자연에 관한 단편들] [기상학]과 같은 작품들에 대한 번역과 함께 주석서들을 집필했는데, 어떤 것들은 한 작품에 대해 2~3가지를 썼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명석한 통찰력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정확히 대변해 주었고 그의 사상에 대한 이해력을 높아졌다는 평가까지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알모하드 왕조의 군주였던 아부 야쿠브 유수프의 통치시대에는 자유로운 사상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 건 확실했지만 대중은 아베로에스의 비정통적인 철학을 못마땅하게 여긴 모양이었다. 그 결과 결국 대중의 압력으로 그의 서적들은 금서가 되었고, 1195년에는 급진신학자들의 박해를 받아 안달루스를 떠나 유배생활을 하게까지 되었다. 유배 생활을 마치고 2년 뒤 풀려난 아베로에스는 코르도바로 돌아갔고, 모로코의 마라케시에서 다음 해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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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코란을 사실이라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코란의 어떤 부분은 명백히 거짓이다.’, ‘코란은 시적 진리이고 분명 철학적 추론을 이용해 해석되어야 한다.’, ‘철학과 종교는 공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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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로에스(Averroes)는 법조계에 종사했던 인물이었다. 중세시대 가장 엄격한 이슬람 정권에 속하는 알모하드 왕조(Almohds) 때 카디(qadi, 이슬람의 재판관)로 활동했던 인물이었지만 통치자 아부 야쿠브 유수프의 신임을 얻은 그는 밤마다 고대 이교도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를 주석하는 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 아베로에스의 열렬한 독자 중 한 명이 다름 아닌 알모하드 왕조의 통치자 아부 야쿠브 유수프(Abu Yacqub Yusuf)였다는 그에게 있어서나 그 시대에 있어서나 너무나도 행운인 일이었다. 

    아베로에스의 유명한 업적이라면 사회의 계층이론을 통해 종교와 철학을 조화시켰다는 것인데, 그는 학식 있는 엘리트층만이 철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고 그 외의 다른 사람들은 그야말로 코란(Qur’an)의 가르침을 의무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코란을 문자 그대로의 방식으로 읽으면 세상에 관한 정확한 설명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여겼고, 하지만 코란은 진리에 가까운 시적 표현이기 때문에 무지한 사람이 이해하기에 가장 좋은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아베로에스는 하지만 학식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철학적 추론을 사용 종교적 의무를 지닌다고 생각했다. 철학적 추론이 코란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거짓임을 보여줄 때마다 아베로에스는 그 글은 분명 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그 말의 명백한 의미는 무시되어야 하고, 그 대신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으로 입증된 과학적 이론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베로에스는 철학과 종교의 공존가능성을 주장하기 위해 널리 신봉되고 있는 이슬람의 교리를 기꺼이 희생시켰다. 예를 들어 거의 모든 이슬람교도들은 우주가 하나의 시작점에서 생겨났다고 믿었지만 아베로에스는 우주가 늘 존재하고 있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 동의하면서 이 관점에 반박할 내용이 코란에는 전혀 없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하지만 환생을 믿는 이슬람의 기본사상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 안에 포함시키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의 신학적 분위기는 당연히 인간의 불멸성을 믿어야 하고 이를 거부하는 사람은 누구든 처형되어야 하는 이단자라고 여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베로에스의 해석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공유된 지적 능력을 통해서만 인간이 불멸성을 지닌다고 주장했고, 아베로에스 역시 인간이 발견할 수 있는 진리들은 영원히 존속되지만 인간은 죽으면 소멸될 것이라고 믿었다. 모든 인간들이 유일하게 지니고 있는 이성만이 오직 분명하다고 주장하고, 개인의 영혼불멸을 부정하며, 또한 세계와 운동의 영원성을 주장했던 것이다. 

    아베로에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옹호해 그의 동료 이슬람교도들에게 배척당했다. 하지만 히브리어와 라틴어로 번역된 그의 저서들은 13세기와 14세기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아베로에스의 견해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아베로에스학파(Averroists)라고 알려졌고, 이 학파에는 나르본의 모세(Moses of Narbonne)와 같은 유대학자들을 비롯해 아나키우스 보이티우스와 브라반트의 시게르(Siger of Brabant)같은 라틴학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베로에스학파의 라틴계 학자들은 분명 기독교의 여러 진리와 상충한다고 단언하면서도 아베로에스가 해석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이성을 따른 진리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이중진리론을 지지했고, 진리가 탐구라는 맥락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이슬람교도들은 12세기에 철학을 합법적인 연구주제로 여기지 않았지만, 아베로에스는 철학이 비평적으로 그리고 철학적으로 반드시 종교와 연관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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