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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척도는 인간’(프로타고라스, 기원전490~420)philosophy/the ancient world 2022. 5. 27. 16:30반응형
‘만물의 척도는 인간’(프로타고라스, 기원전490~420)
프로타고라스는 기원전 490년 그리스 북동쪽의 아브데라(Abdera, 그리스 북부의 트라키에서 네스토스 강이 에게 해로 흘러 들어가는 어귀에 있는 도시. 고대에 도시국가가 자리잡고 있던 곳이다.)에서 태어났다. 그는 평생을 걸쳐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가르쳤다고 알려져 있지만 주요하게 활동했던 장소는 아테네였다.
그가 태어나던 시기의 아테네는 번창하여 중요한 도시국가로 발전한 상태였다. 페리클레스(Pericles, 기원전 445~429년, 고대 그리스 아테나이의 정치가이자, 웅변가, 장군으로 고대 그리스 시대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그리스-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 사이에 아테네의 지도자로서 아테네의 황금 시대를 열었다. 페리클레스의 모계는 역사상 영향력 있었던 알크마이오니다이 가문 출신이라고 알려져 있다.)의 지도력으로 학문과 문화의 ‘황금시대’를 맞이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그리스의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아테네로 몰려들었고, 법을 잘 알고 해석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얻을 수 있는 수익이 매우 컸다고 한다. 아테네는 잘 확립된 법적 체계와 더불어 민주주의 원칙으로 폭넓게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판을 받게 된 사람이 자신이 직접 자기 사건을 변호할 수 있는 제도도 갖추고 있었는데, 변호라라는 직업은 따로 없었지만 바로 이런 제도 덕분에 ‘정평 있는 조언자계층’이 생겨났다고 한다. 프로타고라스 역시 그런 계층 중의 하나였다.
프로타고라스는 아테네에서 금전적인 여유가 되는 사람들에게 법과 수사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의 가르침은 주장의 정담함을 밝히기보다 소송에서 이기려고 논쟁하는 실질적인 문제에 관한 것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가르침이 철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확신했고, 바로 그런 과정에서 그는 진리란 관점에 따라 달라지며, 따라서 상대적이라는 명제를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모든 논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둘 다 똑같이 타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라 그는 가치가 없는 논거라도 그 논거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면 “최악의 소송이라도 이길 수 있다”고 주장했고, 이런 방식의 신념이 그의 철학에도 반영이 되었다.
그는 신념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그 가치의 척도는 바로 그 관점이나 견해를 가진 인간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이 방식은 인간을 그 중심에 놓아둠으로써 철학적 논거에서 종교를 제외하는 전통을 지속시켰고, 또한 철학의 중심을 우주의 본질을 탐구하는 분야에서 인간의 행동을 탐구하는 분야로 옮겨놓았다.
프로타고라스는 주로 실용적인 문제에 관심을 두었던 것이다. 우주의 근본물질이나 신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 고찰에 관해서는 궁극적으로 알 수 없는 것이라 여기고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는 말은 신념이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라는 의미이다. 이를 통해 프로타고라스는 진리나 정의와 도덕에 관해 절대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을 거부했던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한 사람에게 진리인 것은 다른 사람에게 거짓일 수 있다.
이런 상대주의는 또한 ‘무엇이 옳고 그른가’라는 도덕적인 가치관에 적용된다. 프로타고라스에게 있어 본질적인 선이란 아무 것도 없는 무일 뿐이었다. 어떤 것은 오직 판사와 같은 사람들이 그것을 윤리적이거나 옳다고 여기기 때문에 윤리적이고 옳은 일이라는 것이다.
프로타고라스는 돌아다니면서 법과 수사학을 가르치는(기원전 444년에 페리클레스가 프로타고라스에게 식민지 투리오이(Thurii)의 헌법을 써달라고 의뢰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소피스트(그리스어의 원래 의미는 '현자(賢者)', '알고 있는 사람', '지식을 주고 가르치는 사람'이었으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여 '궤변가(詭辯家)'라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지혜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소피아’에서 유래되었다.)로 알려진 교육자들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프로타고라스와 같은 소피스트들을 그저 수사학자라고 조롱했지만 프로타고라스와 같은 소피스트들은 절대적인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도덕적 판단을 비롯한 모든 판단은 주관적이라는 관점을 지향하는 윤리학 분야에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그는 "신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있는지도 있지 않는지도 나는 알 수 없다. 앎을 가로막는 것이 여럿이기 때문이니, 불분명함과 인생의 짧음이 그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런 말들 때문에 그는 400인회(기원전 411년에 있었던 아테네의 과두정부)의 한 사람인 퓌토도로스에게 고발당했고 결국 아테네에서 추방당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시중에 퍼진 그의 책들이 압수당해 아고라에서 불태워졌다고 한다.(불가지론의 지지자였던 그가 이후 신앙심을 버리려고 했기 때문에 그의 저서들이 공개적으로 불태워졌다는 설도 있다.)
여행 중 시칠리아로 가던 배가 침몰해서 죽었다고 전해지는데 그것이 그의 나이 70세였다고 한다. 소피스트로서40년간을 활동하며 살았던 것이다. 정확히 그가 죽은 날짜와 장소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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