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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근원은 무한이다(아낙시만드로스, 기원전 610~546)’philosophy/the ancient world 2022. 5. 14. 17:16반응형
‘만물의 근원은 무한이다(아낙시만드로스, 기원전 610~546)’
아낙시만드로스는 탈레스와 마찬가지로 이오니아의 밀레투스에서 태어난 철학자이다. 탈레스 보다는 15살가량이 젊었기 때문에 그를 스승처럼 모셨다고 알려져 있다. 당연히 그의 사상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며, 특히 ‘세계를 구성하는 근본 재료가 존재한다’는 명제에는 동의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는 스승 탈레스의 주장에는 반대했다.
탈레스는 우주의 근본 물질이란‘모든 것이 생성될 수 있는 것’이고, ‘삶의 필수적인 것’이며, ‘움직일 수 있는 것’ 임과’ 동시에 ‘변화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추론에 의거해 ‘물’을 우주의 근본 물질로 보았다. (참조 https://sikguy.tistory.com/2) 그가 그런 스승의 주장에 반대를 했던 것은 물이라는 존재가 ‘일정한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물이 세상 만물의 근본 재료라고 한다면 모든 만물의 성질은 물처럼 ‘축축’ 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성질의 존재들이 세상엔 있다. 대표적으로 불이 있다. 불의 성질은 어떠한가? 물처럼 축축하지 않고 건조하지 않은가?
그가 생각하기에 모순적인 것은 또 있었다. 백보 양보해 정말 스승 탈레스의 주장처럼 불도 물을 통해 형성된 물질이라고 치자. 만약 그렇다면 불의 본디 재료인 물이 더해지면 불길은 더 살아나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이지 않은가? 불에 물을 끼얹으면 불길이 더 활활 타오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꺼지고 말지 않는가?
사실 많은 철학자들이 그와 같은 고민을 했다. ‘물’만으론 ‘부족(?)’하다는 모순을 깨닫고 기원전 5세기 초 엠페도클레스는 우주가 ‘흙, 공기, 물, 불’이라는 4가지 근본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4원소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낙시만드로스의 사고는 그보다 더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말로 하자면 ‘패러다임’이 달랐다고 할까?
그는 스승이 상상한 ‘실체’ 그 너머의 세계를 상상했고, 그것을 규정하기도 했다. 그것이 아페이론(ἄπειρον)이라는 개념이었다.
아페이론이란 ‘실체가 정해져 있지 않으며 사라지지도 않고 무한히 운동하는 물질’을 말하는데(‘무한한’, ‘끝없는’이란 의미의 고대 그리스어 ‘아페이’에서 온 말이다), 이 무한정한 아페이론에서 하늘과 무수한 세계들이 생겨나고, 다시 모든 것이 이것으로 소멸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생성과 소멸의 과정이 시간의 질서에 따라 무한히 반복되고, 사멸하거나 파괴되지 않는 아페이론이 그 변화의 과정 중에서 뜨거운 것, 차가운 것, 메마른 것, 축축한 것 등으로 나뉜다고 그는 생각한 것이다. 어찌 보면 이것은 현대인들이 흔히 ‘자연의 질서’라고 생각하는 개념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아낙시만드로스는 그의 스승인 탈레스나 다른 철학자들과 분명한 차이점을 보인다. 스승인 탈레스와 다른 철학자들이 만물을 규명하려고 할 때 ‘존재 요소’라는 관점을 가지고 접근했다면, 아낙시만드로스는 ‘구성 원리’라는 관점에서 사고를 했던 것이다.
세계를 구성하는 근본 재료는 무엇일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이 사고의 여행은 결국 ‘어떻게 해야만 만물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구성될 수 있었을까?’라는 ‘원리’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로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즉, 아낙시만드로스는 만물이 하나(물) 혹은 복수의 (흙, 공기, 물, 불 등)의 존재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여러 물질의 상호 작용과 균형으로 이루어진다는 관점을 제시한 것이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 ‘만물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를 넘어서서 ‘만물은 어떻게 구성되는가’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아페이론이 다른 모든 것들의 근원이자 모든 것을 포함하고, 모든 것을 조종한다는 이야기는 얼핏 ‘신의 존재’를 상정하고 한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든 그가 단순히 어떤 단일한 만물의 ‘재료’를 찾으려고 하기 보다는 만물이 물질의 상호 작용과 균형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보다 차원이 높은 사고를 했던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최초로 우주론을 설계하고 제시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현대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꽤나 엉뚱하고 어처구니없는 발상이지만 그는 지구가 원통형의 돌기둥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것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고, 그 원기둥을 세 개의 불의 바퀴가 둘러싸고 있다고 믿었다. 그가 주장한 불의 바퀴에 해당하는 것은 각각 태양, 달, 별 등이었다. 그것들의 둘레에 대해서까지 그는 각각 정확한 수치를 제시했다. 태양 둘레가 지구의 27배, 달이 18배, 별이 9배에 해당한다고 한 것이다. 그는 지구가 왜 멈추어 있는가에 대해서는 지구는 공간상에서 중심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굳이 어느 다른 한 방향으로 움직일 이유가 없어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그의 우주론은 굉장히 합리적으로 우주를 설명한 이론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인들로써는 분명히 우습고 황당한 주장이지만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최초로 우주에 거리라는 개념을 도입한 꽤나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땅이 물 위에 떠 있다고 주장한 것은 탈레스였다. 그는 물속에서 잔물결이나 떨림 현상을 일으키는 무언가로 인해 사람들이 지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 형태는 맞지 않았지만 지구가 공중에 떠 있다고 본 것은 아낙시만드로스였다. 어딘가 어긋나 있으면서 두 사람 다 그 세부적인 내용에서 묘한 통찰력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철학자들은 생각의 틀이 확실히 일반인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2022.05.13 - [philosophy/the ancient world] - 최초의 철학자 '밀레투스의 탈레스(기원전 624~546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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