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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모든 것’(고타마 싯다르타, 기원전 563~483년경)philosophy/the ancient world 2022. 5. 20. 09:36반응형
‘마음은 모든 것’(고타마 싯다르타, 기원전 563~483년경)
석가모니, 세존, 석존 , 부처, 불 , 여래 등 10가지 존칭(서양에서는 흔히 가우타마 붓다Gautama Buddha라고 칭한다)으로 불리우는 고타마 싯다르타(본명: 싯다르타 가우타마)는 샤캬족(카필라바스투를 수도로 하던 고대 인도아리아인 부족) 의 국가인 샤캬 공화국(현재의 네팔)에서 국왕 슈도다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현재 우리들이 알고 있는 그의 삶에 관한 사실은 모두 그가 죽고 난 후 몇 세기 동안 그의 추종자들이 쓴 전기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우리가 부처라고 흔히 부르는 고타마 싯다르타는 룸비니(Lumbini, 오늘 날 네팔에 위치한 곳)의 왕족이었고, 그 출신 성분 덕분에 호화로운 삶과 높은 신분의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실제 젊은 시절의 고타마 싯다르타는 호화로운 삶과 온갖 감각적인 쾌락을 누리며 살았다. 그랬던 고타마 싯다르타는 어느 순간 그런 호화로운 삶과 쾌락만으로는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는 이 세상에서 겪는 고통을 강렬하게 인식했고, 그 고통은 주로 병들고 늙고 죽는 것을 비롯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부족하다는 사실 때문에 생겨난다는 사실을 자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처럼 사람들이 그 고통을 덜기 위해 빠져드는 감각적인 쾌락은 욕구를 거의 충족시키지 못한다. 더욱이 그런 쾌락에 빠져들 때마다 더욱 덧없는 결과가 뒤에 남겨 지게 된다.
29세가 되던 해 어느 날 밤, “무상한 이 세상의 괴로움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선각자적 화두에 사로잡힌 그는 가족에게 무언의 이별을 고한 채 출가하기에 이른다. 말을 타고 성문을 빠져 나온 싯다르타는 시종과 헤어지고 나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수행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여러 고행들을 이어 나간다. 정신을 통일하려고 허리를 땅에 대지 않고 결가부좌를 유지하기도 했고, 삭발하고, 옷을 갈아 입은 뒤 구걸하면서 혼자 성지를 찾아 수행하기도 했다. 남쪽의 마가다 왕국(마가다 왕국의 수도 라자그리하(Rajagrha, 王舍城)는 정치, 경제의 중심지였고, 많은 수도자가 모이는 곳이었다)을 찾아가 거기에서 브라만교의 행자(行者)에게서 요가를 배우기도 했고, 정신적으로 만족하지 못해 이번에는 네란자나 강(Nairanjana, 尼連禪河) 부근에서 단식과 불면의 고행을 하기도 했다.
한때 부왕으로부터 사람이 와 귀국을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타마 싯다르타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부왕은 그의 환국을 단념하고 5명의 현자를 뽑아 그를 수행하게 하였다. 그렇게 6년이 흘러갔다. 결국 고타마 싯다르타는 이러한 육체적인 고행도 효험이 없음을 알고 그만두었다.
지금까지 고행을 같이하던 5명의 수도자도 떠나가고 난 뒤 고타마 싯다르타는 우선 목욕을 하여 심신을 맑게 만들었다. 이후 마을 처녀가 갖다 준 젖과 죽을 마시고 체력을 회복한 그는 부다가야(인도의 비하르 주 가야구역의 도시)로 길을 떠난다. 그리고 그 근처에 있는 우루베라 촌이라는 곳으로 가 우리가 잘 알고 있듯 보리수 밑에 풀을 깔고 새로운 수행에 들어갔다.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절대 그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석가모니는 마음을 좌절 시키려고 달려드는 마라 파피야스(불교의 마신으로, 욕계의 최상층인 타화자재천의 지배자)와의 싸움 끝에 마침내 진정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일체의 공리적 관념을 버리고 자기 마음 속에 있는 욕망을 끊어 없애며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한 그의 노력이 결국 결실을 이룬 것이었다.
그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그가 깨달은 것은 결국 쾌락과 고행 사이에 ‘중도’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그 자신의 경험으로 깨달았다. 젊은 시절 호화로운 삶과 온갖 감각적인 쾌락을 누렸던 그는 그런 삶과 쾌락만으로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후 그 오랜 자진고행을 통해 엄격한 금욕주의 역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결국 고통이란 일반적인 것이며 ‘고통은 생로병사에서 생기는 존재의 기반’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고통은 존재에 반드시 뒤따르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의 근원은 욕구와 기대에 대한 좌절에 있다고 그는 여겼다. 그는 그것을 ‘집착’이라고 명명했다.
그가 집착이라고 명명한 것에는 인간의 감각적인 욕구와 속세의 야망 뿐만 아니라 자기보호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본능 또한 포함된 것이었다. 그는 굉장히 흥미로운 해결방법을 바로 이 지점에서 제시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아의 세계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 세상의 그 어떤 일도 자아의 원인에서 비롯되지 않는 것은 없고, 또한 우리는 모두 궁극적으로 영원하지 않으며 어떤 물질도 존재하지 않는 이 영원한 과정의 일시적인 한 부분일 뿐’이다. 인간이란 만 가지 현상의 하나일 뿐이라고 설파한 노자의 사상 (참고:https://sikguy.tistory.com/4)과 통하는 대목이다.
고통의 원인에서 행복을 달성하기 위한 길에 이르는 고타마 싯다르타의 사상은 사성제(고통은 보편적인 현상이고, 욕구는 고통의 원인이고, 고통은 욕구를 없애면 사라질 것이며, 팔정도를 따르면 욕구를 없앨 수 있다)라는 불교의 가르침으로 성문화된다.
2022.05.16 - [philosophy/the ancient world] - <인간이란 만 가지 현상의 하나일 뿐> (노자, 기원전 6세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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