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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블레즈 파스칼(1623~1662년)philosophy/the medieval world 2022. 9. 10. 14:59반응형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블레즈 파스칼(1623~1662년)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로 유명한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수학자이자 심리학자, 물리학자이자 발명가이기도 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1623년 6월 19일 프랑스의 클레르몽페랑 지방에서 루앙의 회계사 에티엔 파스칼(Étienne Pascal)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수학의 신동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특출난 재능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는 고작 12살 때 기하학도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사실을 오직 자력으로 발견했다고 하며, 13살 때 자신의 이름을 딴 ‘파스칼의 삼각형’을 발견했으며, 16살 때는 첫 수학 논문을 발표하는 한편, 역시나 자신의 이름을 딴 ‘파스칼의 정리’를 증명했다. 18살 무렵에 최초의 디지털계산기를 발명했던 그는 19살이 되던 해엔 세무 감독관으로 일하며 일일이 수작업으로 수많은 양의 세금을 계산하느라 고생하는 아버지를 위해 톱니바퀴를 이용한 최초의 기계식 계산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 에티엔 파스칼 역시 과학과 수학에 대단히 관심이 많은 공무원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피를 물려 받은 때문인지 블레즈 파스칼은 이름난 수학자 피에르 드 페르마(Pierre de Fermat)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확률론의 기초를 세우는 등 적극적으로 수학자로써의 업적을 쌓아나갔다.
파스칼은 종교에도 관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는 평생 두 번에 걸친 개종을 경험했는데, 처음 그가 믿었던 종교는 훗날 이단으로 공표된 당시 기독교의 한 종파였던 ‘얀센파(Jansenism)였고, 그 다음으로 개종해 믿은 종교는 정통 기독교였다.
개종 뒤 한층 더 종교에 심취한 블레즈 파스칼은 어느 순간 수학과 과학 연구를 그만두고 [팡세]를 비롯한 종교서적 집필에 매진하게 된다.
서기 1660~1662년에 세계 최초의 대중교통 운수업을 시작한 뒤 그 이윤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기는 그가 그다지 건강하지 못하던 시기였다. 1650년대부터 극심한 병고에 시달리던 그는 말년에는 두통과 치통을 달고 살았으며, 결국 1662년 누이의 집에서 경련 발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인간은 자연 가운데 가장 연약한 갈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블레즈 파스칼
블레즈 파스칼의 대표작 [팡세]는 철학책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기독교 신학서를 내려고 그가 써둔 단편집이었다. 그가 죽고 난 뒤 그 원고들을 엮어 만든 유고집이 바로 [팡세]였던 것이다.
팡세의 내용은 그가 ‘자유사상가’라고 일컫는 사람들을 주로 겨냥하며 꼬집은 글들이었는데 ‘자유사상가’란 당시 몽테뉴 같은 회의적 저술가들에게 고무되어 자유사상을 좇은 결과 종교를 버린 전 가톨릭교도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 중 비교적 긴 한 단편에서 파스칼은 자유사상가들이 신봉하는 상상력을 논하기도 했는데, 하지만 그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는 거의 혹은 전혀 제시하지 않고, 그 문제에 대한 자기 생각을 적어두려고만 했다.
그 단편에서의 파스칼의 요점은 상상력이 인간의 가장 강력한 힘이자 실수의 주된 원천이라는 것이었다. 그 글에 따르면, 상상력 때문에 우리는 이성적 판단을 무시하고 사람들을 신뢰하게 된다. 예컨대 판사와 의사가 고유의 복장을 갖추고 있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들을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역으로 허름하거나 이상해 보이는 사람이 이치에 맞게 말하더라도 우리는 그에게 그다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상상력의 무서운 점은 그것이 보통 거짓으로 이어지지만 가끔은 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라고 블레즈 파스칼은 주장했다. 결과가 항상 거짓이라면 우리는 단순히 상상의 정반대를 받아들임으로써 그것을 확실성의 원천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인 것이다.
때문에 블레즈 파스칼은 그렇게 무서운 상상력에 대한 반대론을 그 단편에 자세히 제시해 놓았다. 그런데 그후 파스칼은 뜬금없이 그 논의를 이렇게 끝맺어버린다.
“상상력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그것은 아름다움, 정의, 행복 등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것을 낳는다.”
이렇게 그는 갑자기 거기서 맥락에서 벗어나 상상력을 칭찬하는 듯한 문장으로 끝을 맺어 버린다. 블레즈 파스칼은 이미 죽어 버렸기 때문에 팡세를 읽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이 구절 앞의 내용에 비추어 그의 진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미루어 짐작해 보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의 의도가 그 마지막 문장의 표면적 의미와는 사뭇 달랐다고 생각할 수 있다. 상상력은 보통 실수를 유발하므로, 사람들을 신앙으로 이끄는 이성의 역할을 파스칼이 특히 중요시한다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상상력이 낳은 아름다움, 정의, 행복은 보통 거짓일 것이며, 기독교 신학서라는 넓은 맥락을 고려해볼 때, 그가 그렇게 문장을 쓴 목적은 자유사상가들이 선택한 행복한 삶이 그들의 생각대로가 아님을 그들에게 보여주고자 한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즉 파스칼이 보기에, 그들은 이성이라는 길을 선택했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상 상상력의 힘에 현혹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팡세]에 실린 완성도 높은 한 단편과도 밀접히 연결된다. 이 단편은 <파스칼의 내기>로 알려져 있는 단편으로 <파스칼의 내기>는 ‘자유사상가’에게 기독교에 귀의할 만한 이유를 제시할 목적으로 쓰인 글로, 믿음을 결심의 문제로 보는 ‘주의주의’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는 글이다.
이 글에서 파스칼은 신앙의 합리적 이유를 제시하는 일이 불가능함을 인정하지만, 사람들이 그런 신앙을 갖고 싶어 할 만한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신의 존재 여부에 내기를 걸고, 각 경우를 선택했을 때 따름직한 득실을 따져보는 일이다. 파스칼의 주장에 따르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쪽을 선택할 경우 엄청난 손해(천국에서의 무한한 행복)를 무릅써야 하는 반면 사소한 이득(이승에서의 유한한 자유)만 보게 된다. 그러나 신이 존재한다는 쪽을 선택할 경우 무릅써야 할 손해는 미미한 반면 앞으로 얻을 이익은 엄청나다. 이를 고려하면 신을 믿는 편이 더 합리적이다.
“상상력은 인간의 강력한 힘이다.”
“그것은 이성보다 우선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를 참으로 이끌기도 하고 거짓으로 이끌기도 한다.”
“우리는 아름다움, 정의, 행복이 실제하지 않는 경우에도 그것을 볼 수 있다.”
“상상력은 우리를 타락의 길로 이끈다.”
파스칼에 따르면, 우리는 끊임없이 상상력에 속아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 옷차림을 근거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바로 그런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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