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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그에 내재하는 만물의 원인이다’, 바뤼흐 스피노자(서기 1632~1677)philosophy/the medieval world 2022. 9. 16. 17:40반응형
‘신은 그에 내재하는 만물의 원인이다’, 바뤼흐 스피노자(서기 1632~1677)
‘범신론’으로 유명한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는 서기 1632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유대계 상인인 아버지 미겔 지 이스피노자와 어머니 아나 데보라 이스피노자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들은 포르투갈에서 가톨릭 교회의 종교 재판과 유대인 탄압을 피해 망명한 사람들이었다. 그의 친할머니가 로마 가톨릭 교회에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하는 등, 스피노자의 조상은 포르투갈 유대 세파르딤 혈통으로서 유럽의 종교개혁기에 박해를 받아왔는데, 이 때문에 그의 부모님들은 포르투갈을 떠나 그나마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었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정착을 한 것이었다.
암스테르담에 정착한 뒤 아버지 미겔 지 이스피노자의 사업은 성공한 편이었다. 그를 통해 네덜란드 유대인 사회 내에서 꽤 자리를 잡게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스피노자의 아버지 미겔 지 이스피노자는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후 아버지가 경영하던 수입 상품점을 물려 받은 스피노자는 유대 공동체인 시나고그에서 전통적인 유대식 교육을 받게 된다. 그는 율법학자(랍비)가 될 것이라고 촉망을 받기까지 했지만, 라틴어를 배우고 그리스 철학 및 아랍 철학을 접하면서 더이상 유대교의(敎義)에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르네상스, 데카르트 등의 영향을 받아1651년경부터 독자적인 사상을 갖게 되었다.
유대교 사회는 그가 내세우는 사상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에게 유대교 비판과 신을 모독했다는 죄목을 붙여 가혹한 탄압을 가한 뒤 1660년경 저주와 함께 그에게 파문 선고를 내린다.
"천사들의 결의와 성인의 판결에 따라 스피노자를 저주하고 제명하여 영원히 추방한다. 잠잘 때나 깨어있을 때나 저주받으라. 나갈 때도 들어올 때에도 저주받을 것이다. 주께서는 그를 용서 마옵시고 분노가 이자를 향해 불타게 하소서! 어느 누구도 그와 교제하지 말 것이며 그와 한 지붕에서 살아서도 안 되며 그의 가까이에 가서도 안 되고 그가 쓴 책을 봐서도 안 된다"(1656년 7월 27일, 스피노자가 유대교회의 종교의식에 따라 파문되었을 때의 파문 문서 내용)
그들은 스피노자의 가르침을 멀리하길 바랐다.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은 나중에 기독교 신학자들에게 비판받다가 결국 1674년에 금서로 묶였다. 사람들의 격분 때문에 스피노자는 걸작 [에티카]를 죽을 때까지 발표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유대교회에서 그를 저주했던 것과 달리 스피노자는 겸손하고 극히 도덕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지적 자유를 위해 수차례 유망한 교수직 제의를 거절했고, 대신 철학 개인교수와 렌즈 연마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는 네덜란드 곳곳을 떠돌며 검소하게 살아가다가 1677년 폐결핵을 숨을 거두었다.
“세상에는 오직 하나의 실체만 있다.”
“모든 존재는 이 실체로 만들어져 있다.”
“이 실체란 ‘신’, 즉 ‘자연’이다.”
“그것은 우주 만물에 다음을 부여한다.”
“형성 과정, 목적, 형상, 질료.”
“이 네 가지 방식으로 신은 만물의 ‘원인’이 된다.”
17세기의 여느 철학처럼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의 철학체계 역시 ‘실체’라는 개념을 중심에 두고 있다. 이 개념의 유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살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이렇게 물었다. “한 물체가 변화를 거치더라도 계속 그대로 있는 요소는 무엇인가?” 예컨대 밀랍은 녹으면서 모양과 크기, 색깔, 냄새, 질감이 바뀌지만 그래도 여전히 밀랍이다. 밀랍이 어떻게 바뀌든 우리가 그것이 밀랍임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모양과 크기, 색깔, 냄새, 질감 등 표면적인 속성을 초월한 그 무엇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불변의 무엇을 밀랍의 실체라고 보았다. 말하자면 실체란 속성을 띠는 것, 즉 겉으로 보이는 세계의 밑바닥에 잠재하는 것이다.
스피노자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실체’ 개념을 사용했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실체란 자명한 것, 즉 그것의 본질만 알면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그런 실체는 오로지 하나만 존재할 수 있다. 만약 그것이 둘이라면, 하나를 이해하려면 다른 하나와의 관계도 이해해야 하는데 이것은 실체의 정의에 모순되기 때문이다.
또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그런 실체는 하나만 존재하므로, 사실상 그 실체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 그 밖의 모든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 실체의 일부다. ‘실체일원론’으로 알려진 스피노자의 견해에서는 만물이란 근본적으로 한 가지 실체의 여러 양상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대되는 ‘실체이원론’에서는 우주에 근본적으로 두 가지 실체, 즉 흔히들 규정짓는 바에 따르자면 ‘정신’과 ‘물질’이 있다고 주장한다.
스피노자가 보기에 실체는 한편으로는 우리 경험의 밑바닥에 잠재하지만, 한편으로는 온갖 속성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는 실체가 얼마나 많은 속성을 띠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지만, 인간이 적어도 두 가지는 인식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둘이란 곧 연장성(물질성)과 사유성(정신성)이다. 이런 까닭에 스피노자는 ‘속성이원론자’로도 알려져있다.
이 속성이원론에서 스피노자는 두 속성 중 하나로 다른 하나를 설명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했다. 세계를 완전히 설명하려면 둘 다 설명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실체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스피노자는 우리가 그것을 ‘신’이나 ‘자연’으로 부름이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그 자명한 실체는 인간의 모습을 한 경우라면 육체와 정신이라는 속성으로 드러난다.
인간을 비롯한 개개 사물의 수준에서 스피노자의 속성이원론은 ‘정신과 육체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라는 문제를 어느 정도는 다룬다. 우리가 개개의 육체나 정신으로 경험하는 대상들은 사실상 한 실체의 변형으로, 그것의 여러 속성 중 하나로 인식된다. 각 변형은 물질적인 것(연장성으로 인식되는 것)인 동시에 정신적인 것(사유성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예컨대 인간의 정신은 사유성으로 인식되는 실체의 변형이고, 인간의 뇌는 연장성으로 인식되는 같은 변형이다.
그런데 그 이론에서 스피노자가 밝히는 견해에 따르면, 인간만 육체인 동시에 정신인 것이 아니라 다른 만물도 마찬가지다. 탁자, 바위, 나무 등도 모두 한 실체의 변형으로, 사유성과 연장성을 띤다. 따라서 그것들도 모두 물질적이면서 정신적인 사물이다. 물론 그것들의 정신성은 너무나 단순해서 우리가 정신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다. 스피노자 이론의 이 측면은 사람들이 대부분 받아들이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에티카]에서 밝힌 스피노자 이론은 보통 범신론으로 불린다. 범신론이란 신이 곧 세계요, 세계가 곧 신이라고 믿는 관념이다. 범신론을 자주 비판하는 일신론자들(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것이 이름만 다를 뿐 무신론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이론은 실제로 만유내재신론, 즉 세계는 신이지만 신은 세계 이상의 존재라고 보는 견해에 훨씬 가깝다. 스피노자의 체계에서는 세계란 곧 물질적, 정신적 요소의 덩어리가 아니라, 물질적 세계는 신의 한 유형이 연장성으로 인식된 것이고 정신적 세계는 같은 유형의 신이 사유성으로 인식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하나의 실체, 즉 신은 세계 이상의 존재인 반면 세계 자체는 전적으로 실체, 즉 신이다.
하지만 스피노자의 신은 정통 유대교, 기독교 신학에서 이야기하는 신과 명백히 다르다. 그것은 위격이 아닐 뿐 아니라 <창세기>에 나오는 의미의 창조주로 볼 수도 없다. 스피노자의 신은 창세 전에 홀로 존재하다가 그후에 만물을 창조하지 않는다.
“정신과 육체는 하나다.”-바뤼흐 스피노자
“인간의 정신은 신의 무한한 지성의 일부다.”-바뤼흐 스피노자
“우주 만물은 (심지어 바위조차도) 몸체와 정신을 갖추고 있다. 몸체와 정신은 실체의 속성이다. 실체는 곧 신이며, 그 신 안에서는 모든 것이 명백히 설명된다.”-바뤼흐 스피노자
스피노자에 따르면, 동물이건 식물이건 광물이건 사물은 모두 정신성이 있다. 그것들의 몸체와 정신은 온 세계의 물질적, 정신적 속성보다 광대한 신의 일부다. 스피노자에게 신은 현실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실체’였다. 스피노자가 보기에 기분의 변화에서 촛불의 모양 변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변화는 정신적 속성과 물질적 속성을 다 갖춘 하나의 실체에 일어난 변화라고 볼 수 있는 것이었다.
2022.06.14 - [philosophy/the ancient world] - ‘모든 이해는 감각에서 시작된다(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384~3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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