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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습관은 생활의 훌륭한 길잡이다’, 데이비드 흄(서기1711~1776년)
    philosophy/the age of revolution 2022. 10. 4.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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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6 - [philosophy/the medieval world] - ‘사물은 지각하거나 지각될 때만 존재한다’, 조지 버클리(서기1685~1753년)

    2022.09.26 - [philosophy/the medieval world] - ‘사물은 지각하거나 지각될 때만 존재한다’, 조지 버클리(서기1685~1753년)

     

    ‘사물은 지각하거나 지각될 때만 존재한다’, 조지 버클리(서기1685~1753년)

    ‘사물은 지각하거나 지각될 때만 존재한다’, 조지 버클리(서기1685~1753년) 아일랜드의 철학자이자 성공회 주교이기도 했던 조지 버클리는, 아일랜드 토머스타운 근처에 있는 킬케니(Kilkenny)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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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습관은 생활의 훌륭한 길잡이다’, 데이비드 흄(서기1711~1776)

    David Hume,AD1711~1776
    David Hume,AD1711~1776

    합리주의를 반박한 책 [인성론A Treatise of Human Nature]으로 유명한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1711 4 26, 변호사인 아버지 조피프 흄과 어머니 캐서린 팔코너의 2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Edinburgh)에서 동남쪽으로 80km 떨어져 있는 천사이드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흄은 그곳에서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다. 

    이곳에서 초등 교육을 받은 흄은 12살의 어린나이에 에든버러 대학교에 입학하여 그리스 고전, 논리학, 형이상학, 뉴턴의 자연철학 등을 공부했다. 하지만 2년 간의 대학 생활에 염증을 느낀 그는 집에서 공부하면서 문필가의 길로 방향을 틀었다. 

    이때 그가 천착한 것은 진리를 밝힐 수단을 찾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결국 신경쇠약으로 침체기에 빠지기도 하고, 설탕 상인 밑에서 일하기도 하던 중, 24살이 되던 해에 문필가의 삶을 시작하기 위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목적지는 프랑스 앙주(Anjou) 공국의 시골 마을 라플레셰였다. 이곳에는 데카르트를 배출한 곳으로 유명한 예수회대학이 있었다. 흄은 비록 신앙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지만, 학문적으로 비옥한 이곳에서 그의 대표작으로 남을 《인성론》의 대부분을 집필했다. 흄은 이 책에서 경험과 관찰에 토대를 둔 새로운 인간학을 세우고자 했다. 이후 그는 책을 출판하기 위해 다시 영국 런던으로 갔다.

    그의 첫 책인 《인성론》은 불과 20대에 쓴, "그 자체로도, 또 사상사에 끼친 영향으로도 역대 최고의 철학서"라 꼽히는 저서였다. 하지만, 당시 런던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무신론자라는 위험한 사상가로 낙인까지 찍혔다. 이에 크게 실망한 흄은 《인성론》이 "인쇄기에서 이미 사산되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낙심했다. 게다가 흄은 이 책 때문에 한동안 종교적인 이유로 반대를 받아 교수직에 임용되지 못했다.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서 애넌데일 후작의 가정교사로 들어가기도 하고, 세인트 클레어 장군의 제안으로 프랑스 원정길에 비서로 동행하기도 하는 등 다사다난한 일을 겪었다. 결국 흄은 에던버러로 돌아와, 스코틀랜드 변호사협회 도서관 사서로 일하게 된다.

    흄은 도서관의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영국사》를 집필하기 시작하여 이를 8년 간에 걸쳐 6권의 전집으로 출간했다. 그는 이 방대한 작업으로 "영국의 가장 위대한 저술가", "스코틀랜드의 타키투스", "그 어떤 언어로 쓰인 책 중에서도 단연 최고" 등의 극찬을 받았다. 책의 인기는 대단해서 수십년 동안 영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역사서로 군림했다. 이 책의 성공으로 흄은 돈과 명예를 얻었다.

    1763년 흄은 프랑스 대사로 부임하는 허트포드 경을 따라 파리로 갔다. 프랑스에도 흄의 명성은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흄이 프랑스로 온다고 하자 파리 사교계는 그를 크게 환대했다. 그는 18세기 유럽 계몽주의의 또 다른 현장이었던 파리의 살롱을 드나들며 드니 디드로, 달랑베르, 몽테스키외 등과 사귀었다. 한편 종교적 이유로 곤경에 처해 있던 장 자크 루소와도 이때 처음 만났는데, 한 때 비슷한 처지였던 흄은 이를 이해하고 그를 영국으로 초대하여 은신처를 제공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루소는 흄이 자신을 중상모략했다는 피해망상에 시달렸고, 결국 흄에게 절교 선언을 한다. 이후 흄은 2년간 국무차관이 되어 공무를 수행했다.

    말년에 흄은 공직에서 물러나 고향인 에든버러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동안 명예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 많은 친구들과 사교의 즐거움을 누렸다. 상당한 식도락가이기도 했던 그는 손님에게 요리 접대를 한다는 명목으로 에든버러 신시가지에 새 집을 짓기도 했다. 하지만 새 집으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대장과 간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다. 

    항상 긍정적으로 살았던 그는 임종을 앞둔 상태에서도 놀라울 만큼 차분함과 쾌활함을 유지했다고 한다. 1776 4월에 짧은 자서전 《나의 생애》를 저술하고 8월에는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를 지었는데 여기엔 기독교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어서 조카에게 자신이 죽고 난 후 출간해 달라고 부탁했다. 흄은 1776 8 25, 6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유해는 에든버러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올드 칼튼 묘지에 묻혔다.

     

    나는 아침마다 해가 뜨는 모습을 본다. 나는 해가 아침마다 뜰 것이라고 습관적으로 기대하게 된다. 나는 이것을 정리하여 해는 아침마다 뜬다라는 판단을 이끌어낸다. 이 판단은 논리적 진리가 될 수 없는데, 해가 뜨지 않는 것을(아무리 그럴 법하지 않더라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판단은 실증적 진리가 될 수 없는데, 나는 미래에 해가 뜨는 모습을 지금 관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믿음을 뒷받침하는 합리적 근거는 없지만, 습관 때문에 나는 해가 아침마다 뜰 것이라고 생각한다. 습관은 생활의 훌륭한 길잡이다.”-데이비드 흄

     

    데이비드 흄(David Hume)은 지식의 본질에 대한 논란이 유럽철학을 지배하던 시기에 태어났다. 르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합리적 반성만으로 지식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유럽 합리주의운동을 부추겼고, 이에 반기를 든 영국의 존 로크는 지식을 경험에서만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경험주의 주장을 펼쳤다. 이어서 조지 버클리는 세계란 인식될 때만 존재한다는 독특한 경험주의를 내놓았다. 그리고 바로 영국 경험주의자 3인방의 세 번째 주자인 데이비드 흄은 [인성론]에서 제시한 주장으로 합리주의에 치명타를 가했다. 

     

    사실에 관한 추론에는 확신이 얼마든지 들어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이라면 자기 믿음을 증거에 맞출 것이다.”-데이비드 흄

     

    남달리 명쾌한 문체로 흄은 지식 문제에 회의적 시선을 던지며, 우리가 본유관념을 품은 채 태어난다는 견해(합리주의의 핵심신조)를 강력히 반박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우선 우리 정신의 내용을 두 종류의 현상으로 나눈 다음, 이 둘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 두 현상이란 인상 관념인데, 전자는 흄이 감각, 격정, 감정이라고 부르는 직접적 지각이고 후자는 생각, 의견, 상상 등 인상의 흐릿한 사본이다. 이 둘의 차이를 분석하면서 흄은 파격적 결론을 이끌어낸다. 흄은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면서 이성의 동물이기는 하지만, 이성은 감정의 노예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각활동과 경험이 있어야 이성적 판단도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그 말은 즉, 우리가 이성으로 판단하는 것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론은 논리학과 과학 뿐 아니라 세계의 본질에 대해 사람들이 마음속 깊이 품고 있는 신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었다. 

    수학과 논리학은 데이비드 흄이 말하는 논증적 진리로, 모순 없이 부정될 수 없다. 이런 진리는 흄이 유일하게 확실하다고 여기는 것이었다. 흄이 생각하는 문제는 우리 관념이 인상으로 뒷받침되지 않을 때가 매우 많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흄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그러한지 알아보는 일에 관심을 두었다. 

    흄이 보기에 진술의 종류에는 두 가지, ‘논증적 진술과 개연적 진술밖에 없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일상경험에서 우리는 두 진술이 표현하는 두 유형의 지식을 어떤 식으로든 혼동한다. 

    논증적 진술은 참인지 거짓인지가 자명한 진술이다. 예로 “2+2=4”라는 진술을 생각해보자. 이 진술을 부정하면 논리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다시 말해 “2+2 4와 같지 않다고 주장하는 행위는 곧 ‘2’ ‘4’ ‘+’ ‘=’의 의미를 잘못 파악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논리학, 수학, 연역추리의 논증적 진술은 우리가 선험적으로(경험하기 전에) 참인지 거짓인지 알고 있다. 

    반면에 개연적 진술의 진위는 자명하지 않다. 그 까닭은 그것이 경험적 사실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A는 위층에 있다같은 진술은 개연적 진술이다. 그것을 참인지 거짓인지 밝히려면 경험적 증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의 진위를 밝히려면 위층에 직접 올라가서 확인하는 일 같은 실험이 꼭 필요하다. 

    흄에 의하면 우리는 어떤 진술에 대해서든 그것이 개연적인지 논증적인지 따져볼 수 있다. 만약 어떤 진술이 개연적이지도 논증적이지도 않다면 우리는 그것의 진위를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흄에게 그것은 무의미한 진술이다. 모든 진술을 두 종류로 나누는 이러한 구분을 흔히 흄의 포크라고 부른다. 

    그가 한 이런 주장을 귀납추리(과거의 증거에서 어떤 결론을 이끌어내는 일)에 한 번 적용해 보도록 하자. ‘불변의 패턴을 관찰하면 우리는 그 패턴이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결론 짓는다. 예를 들면 우리는 아침마다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서, 그것이 내일도 떠오를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그런데 자연이 그 한결같은 패턴을 따른다는 주장은 과연 타당할까? 해가 내일 떠오를 것이라는 주장은 논증적 진술이 아니다. 정반대 주장이 논리적 모순을 수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개연적 진술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우리는 태양이 미래에 떠오르는 것을 지금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흄에 따르면, 내일 해가 뜰 것이라거나 수도꼭지에서 과일이 아니라 물이 나올 것이라는 믿음의 근거는 타당하지 않다. 그런 믿음은 우리가 내일의 세계도 오늘과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조건반응훈련의 결과일 뿐이다. 

     

    절대적이고 통제불가능한 어떤 필요성 때문에 자연은 우리를 숨쉬고 느낄 뿐 아니라 판단하도록 만들었다.” -데이비드 흄

     

    흄의 포크를 인과성의 증거에 적용해도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A라는 사건이 B라는 사건을 일으킨다라는 진술은 언뜻 생각하기에 우리가 입증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이 역시 면밀한 검토를 견뎌내지 못한다. A B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부정해도 (“2+2=4”를 부정할 때와 달리) 논리적 모순이 뒤따르지 않으므로, 이는 논증적 진술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경험으로 증명할 수도 없다. 사건 A에 사건 B가 뒤따르는지 보려고 모든 사건 A를 관찰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개연적 진술도 아니다. 우리의 한정된 경험 안에서 B가 항상 A를 뒤따른다는 사실은 A B가 항상 뒤따를 것이라는 믿음,  A B를 일으킨다는 믿음을 뒷받침하는 합리적 근거가 아니다. 

    인과관계추리는 우리 모두가 하고 있는 것이지만 흄에 의하면 그것은 합리적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떤 이유로 그런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흄은 그것이 인간의 본성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즉 그것은 일반적 반복에 일정불변성이라는 의미를, 사건들의 항시적 동반에 인과관계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정신적 습관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흄은 가장 강력한 합리주의 반대론을 내놓는다. 그에 따르면, 지식에 대한 우리 주장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습관에 인도되는 믿음이다. 그는 믿음을 현재의 인상과 관련된 생생한 관념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흄은 귀납추리가 증명되지 않는다고 그것이 무용하다는 뜻은 아니라고도 이야기했다. 어쨌든 여전히 우리는 과거의 관찰과 경험으로 미루어 뭔가가 일어나리라고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다. 그는 귀납추리를 뒷받침하는 합당한 근거가 없다고도 이야기했지만 동시에 습관은 훌륭한 길잡이라고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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