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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의 관점에서만 우리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이마누엘 칸트(서기 1724~1804년)
    philosophy/the age of revolution 2022. 11. 10.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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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manuel Kant, AD1724~1804
    Immanuel Kant, AD1724~1804

    ‘인간의 관점에서만 우리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이마누엘 칸트(서기 1724~1804년)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munft], [도덕형이상학원론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실천이성비판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판단력비판Kritik der Urteilskraft] 등 후세에 길이 남을 명저와 위대한 사상을 남긴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서기 1724년 프로이센의 상업도시 쾨니히스베르크(현재의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서 수공업자인 아버지 요한 게오르크 칸트(Johann Georg Kant, 1682–1746)와 어머니 아나 레기나 칸트(Anna Regina Kant, 혼전 성씨: 로이터·Reuter, 1697–1737)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요한 게오르그 칸트는 당시 프로이센에서 가장 북쪽 도시인 메멜에서 이주한 독일인 마구(馬具) 제작자였다. 어머니 아나 레기나 칸트는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났고, 그의 할아버지는 스코틀랜드에서 동프로이센으로 이주한 사람이었다.

    형편이 넉넉지 못한 마구 생산업자의 가정에서 11명의 형제 중 넷째로 태어난 이마누엘 칸트는 어린 시절에는 그다지 돋보이지 않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성실한 학생이었고, 경건주의를 따르는 가정에서 성장한 탓에 받은 교육은 수학과 과학보다는 주로 라틴어와 종교 쪽이었다. 모두 엄격하고 가혹한 훈련을 요하는 것들이었다.

    그런 집안이었던 만큼 그의 부모님은 청교도적인 생활을 했고, 이는 유년시절 칸트의 세계관에 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칸트는 1732년 어머니 아나 레기나 칸트와 친분이 있던 신학자 슐츠가 지도하던 사학교 프리드릭스 김나지움에 입학했다. 1740년에 김나지움을 졸업한 칸트는 같은 해 쾨니히스베르크의 대학에 입학하여 철학과 수학을 공부했다. 이후 칸트는 자연과학에 관심을 두었고 아이작 뉴턴의 물리학에 매료되었다.

    1746년 《활력의 진정한 측정에 관한 사상》(Gedanken von der wahren Schätzung der lebendigen Kräfte)이라는 졸업논문과 함께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을 졸업한 칸트는 이후 아버지가 사망함에 따라 생계유지를 위해 수년에 걸쳐 지방 귀족가문의 가정교사로 생활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는 철학연구만은 멈추지 않았다. 

    다시 대학으로 돌아간 칸트는 1755년 6월 12일, 《일반자연사와 천체이론》(Allgemeine Naturgeschichte und Theorie des Himmels)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음과 동시에 《형이상학적 인식의 으뜸가는 명제의 새로운 해명》(Principorum primorum cognitionis metaphysicae nova dilucidatio)이라는 논문으로 대학에서 강의할 자격을 얻었다. 

    이후 대학에서 칸트는 일반논리학, 물리학, 자연법, 자연신학, 윤리학 등 여러 주제로 강의를 했다. 1756년 크누첸이 사망한 뒤 칸트는 그 후임 교수직을 얻으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고, 1764년에는 프로이센의 교육부에서 제공한 문학 교수자리를 거절했다. 

    1766년에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왕립도서관 사서로 취직한 칸트는 1772년까지 그곳에서 근무했다. 그사이 칸트는 원하던 대로 쾨니히스베르크 대학 철학 교수직을 얻었으며, 이때 발표한 교수취임논문(1770년)은 칸트 비판 철학의 시작을 알리는 저술로 평가되고 있다.

    이후 10여 년간 철학적 침묵기를 거친 뒤 칸트는 1780년대에 일련의 중요한 저서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Beantwortung der Frage: Was ist Aufklärung?, 1784), 《윤리 형이상학의 정초》(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1785),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기초》(Metaphysische Anfangsgründe der Naturwissenschaft, 1786)를 잇달아 발표하면서 점점 명성이 올라갔다. 또한 《순수이성비판》(초판:1781년, 재판:1787년), 《실천이성비판》(1788), 그리고 《판단력비판》(1790)에서 그의 비판철학의 정수를 선보였다. 눈부신 학문적 성취와 더불어 1786-8년에는 쾨니히스베르크대학의 총장에 선출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칸트는 한번도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나지 않았으며, 평생동안 규칙적인 일상생활을 하면서 강의와 사유에만 전념했다. 1792년에는 논문출판과 검열을 두고 학부 관리처와 작은 의견 충돌이 있었는데, 문제의 논문은 《인간본성에 있어서의 근본악에 관하여》(Vom radikalen Bösen in der menschlichen Natur)란 제목이었다. 당시의 계몽주의사상과 종교에 관한 칸트의 솔직한 견해가 대학 관리처로부터 경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커피와 담배를 즐겼던 칸트는 1804년 2월 12일 새벽 4시, 80세를 향년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그것으로 좋다(Es ist gut)”였다고 한다. 

     

    “철학의 시작은 바로 그 한계를 아는 것이다.”-이마누엘 칸트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철학적 사유가 2천 년 넘도록 이어져오는 동안 그 누구도 우리 외부세계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했다는 것이 ‘수치스럽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르네 데카르트와 조지 버클리의 이론을 각별히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둘 다 외부세계의 존재에 대해 의심을 품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성찰]의 앞부분에서 데카르트가 주장한 바에 따르면, 우리는 생각하는 내가 존재한다는 지식을 제외한 모든 지식을 의심해야 한다. 외부세계가 존재한다는 지식도 마찬가지다. 이어서 그는 이 회의적 관점을 반박하려고, 신의 존재와 외부세계의 존재를 증명하는 논증을 펼친다. 그러나 칸트는 다른 여러 철학자들처럼 데카르트의 신 존재 증명이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편 버클리의 주장에 따르면, 지식은 우리 의식이 지각하는 경험에서 비롯한다. 우리는 이런 경험에 자기 정신 밖의 존재가 포함된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없다. 

     

    “우리의 감성은 세계의 사물을 감지하는 능력이다. 우리의 오성은 사물에 대해 생각하는 능력이다. 공간과 시간은 경험으로 깨달을 수 없으며, 그것은 정신이 직관하는 대상이다. 따라서 사물은 우리 정신에 감지될 때만 공간과 시간 속에 나타난다. 개념은 우리 정신에 감지될 때 사물에 적용될 뿐이다. ‘물자체(우리 정신의 외부라고 여기는 것)는 공간과 시간은 물론 그 어떤 개념과도 무관할 것이다. ‘물자체’는 알 수 없다. 세계는 두 가지가 존재하는데, 하나는 우리 육체가 감지하는 경험의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 자체다.” -이마누엘 칸트

     

    칸트는 외부에 물질세계가 존재한다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의 논증은 이렇게 시작된다. 존재하는 사물은 시간 속에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이 언제 존재하며 얼마나 오래 존재하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내 의식에 대해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의식이 느낌과 생각의 지속적 흐름과 더불어 끊임없이 변화하긴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의식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언급할 때 ‘지금’이라는 단어를 쓴다. 그러나 ‘지금’은 확정적인 시간이나 날짜가 아니다. 내가 ‘지금’이라고 말할 때마다 의식은 달라져있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무엇 덕분에 우리는 자신이 존재하는 ‘시간’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우리는 시간 자체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다. 우리는 오히려 움직이고 변화하거나 그대로 머물러 있는 사물을 통해 그것을 경험한다. 끊임없이 천천히 돌아가는 시곗바늘을 생각해보라. 움직이는 시곗바늘 자체만으로는 시간을 확정할 수 없다. 시계 문자판의 숫자처럼 시곗바늘의 변화와 대비되는 사물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금’을 헤아리는 수단은 모두 내 외부의 공간에 있는 물체에서 발견된다(내 육체도 여기에 포함된다). 내가 존재한다고 말하려면 확정적 시점이 필요하고, 결국 시간의 흐름이 나타나는 실제 외부세계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외부세계의 존재에 대해 내가 확신하는 정도는(데카르트가 확신한) 의식의 존재에 대해 내가 확신하는 정도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마누엘 칸트에 따르면, 우리는 시곗바늘처럼 움직이거나 변화하는 외계 물체를 통해서만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간은 간접적으로만 경험된다.”

     

    칸트는 과학자들이 외부세계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도 살펴보았다. 그는 자연과학이 지난 두 세기에 걸쳐 이루어낸 경이로운 진보에 감탄했다. 이는 고대부터 그 시기 전까지 계속된 상대적 침체기와 대조되었다. 칸트를 비롯한 철학자들은 과학연구에서 갑자기 무엇이 제대로 행해지고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당대의 여러 사상가들이 내놓은 답은 경험주의였다. 존 로크와 데이비드 흄 같은 경험주의자들은 우리가 세계를 경험함으로써 얻는 지식 외에는 아무런 지식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데카르트나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같은 합리주의 철학자들의 견해에 반대했다. 합리주의자들은 개념을 다루고 추리하는 정신적 능력이 경험보다 지식 습득에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경험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과학의 성공은 과학자들이 세계를 이전보다 세심하게 관찰하며, 이성에만 기초한 부당한 가정을 덜 세운 덕분이었다. 하지만 칸트에 따르면, 그 주장이 분명 부분적으로는 옳을 수 있으나 완전한 대답이 될 수는 없었다. 16세기 이전의 과학연구에서 정밀하고 신중한 경험적 관찰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은 거짓이기 때문이다. 

    칸트의 주장에 따르면, 정답은 경험적 관찰에 가치를 부여하는 새로운 과학적 방법론이 등장했다는 데 있었다. 이 방법론은 두 가지 요소를 수반하는데 첫째, 그 방법론에서는 힘이나 운동 같은 개념을 수학으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둘째, 그 방법론에서는 세계에 대한 과학적 발상을 시험하려고 자연에 관한 구체적 질문을 던진 후 그 답을 관찰한다. 예컨대 실험물리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무게가 다른 두 물체도 공기 중에서 같은 속도로 떨어질 것이라는 가설을 시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관찰 결과를 해석하면 가설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밖에 없는 실험을 고안해냈다. 

    칸트는 과학적 방법의 본질과 중요성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는 이 방법이 물리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를 ‘과학이라는 탄탄대로’에 올려놓았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의 탐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의 다음 질문은 이랬다. “왜 우리의 세계 경험에 과학적 방법이 통할까?” 바꿔 말하면, 왜 우리의 세계 경험은 항상 수학적이며, 어떻게 해서 인간의 이성은 항상 자연에 질문을 던질 수 있는가?

     

    “내용 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그것들이 결합해야만 인식이 일어날 수 있다.”-이마누엘 칸트

     

    대표작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가 주장한 바에 따르면,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두 가지 요소를 수반한다. 하나는 이른바 ‘감성’, 즉 우리가 공간, 시간 속의 특정 사물(당신이 읽고 있는 이 책 등)을 직접 인식하는 능력이다. 이런 직접적 인식을 그는 ‘직관’이라고 부른다. 다른 하나는 칸트가 ‘오성’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개념을 간직하며 이용하는 능력을 뜻한다. 

    칸트에게 개념이란 일반적 ‘책’ 개념처럼 사물들을 어떤 사물 유형의 예로서 간접적으로 인식한 것이다. 개념이 없으면 우리는 직관의 대상이 책이라는 점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직관이 없으면 우리는 여기 책이 존재한다는 점을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들 각 요소에는 양면이 있다. 감성에는 공간, 시간 속의 특정 사물(책)에 대한 직관과 아울러, 흔히들 말하는 공간, 시간에 대한 직관(일반적으로 공간, 시간이란 어떤 것이라는 인식)이 관련되어 있다. 

    오성에는 어떤 사물 유형(책)에 대한 개념과 아울러, 흔히들 말하는 ‘사물(실체)’에 대한 개념이 관련되어 있다. 실체 같은 개념은 일반적으로 사물이란 무슨 뜻인지를 규정짓지, 책 같은 사물 유형을 규정짓지는 않는다. 책에 대한 직관과 책이라는 개념은 경험적이다. 세계에서 책과 마주치지 않았다면 내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반면에 공간, 시간에 대한 직관과 실체라는 개념은 ‘선험적’이다. 경험에 앞서서, 즉 경험과 무관하게 우리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골수 경험주의자는 지식이란 모두 경험에서 비롯한다며, 즉 선험적 지식이란 없다며 칸트의 주장을 반박할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우리는 공간 속의 사물을 관찰함으로써 공간이 무엇인지 깨닫고, 사물의 특징은 변하지만 근본적 사물 자체는 변하지 않는 모습을 관찰함으로써 실체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예를 들면 나뭇잎이 녹색에서 갈색으로 바뀌고 결국 나무에서 떨어지더라도 그 나무는 여전히 나무로 보인다. 

     

    “이마누엘 칸트는 지식을 둘로 나누었다. 하나는 세계에 대한 직접적 감성에서 얻는 직관이고, 다른 하나는 오성에서 간접적으로 비롯하는 개념이다. 이런 지식(감성의 지식, 오성의 지식)의 일부는 경험적 증거에서 비롯하는 반면, 일부는 선험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마누엘 칸트에 따르면 우리는 나무 같은 사물의 변화를 오성으로 이해할 때 이미 ‘실체’라는 개념을 선험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런 개념은 우리 경험의 전제조건이다.”

     

    그와 반대로 칸트의 논증에서는 공간이 선험적인 직관적 지식임을 보여준다. 내외부의 사물에 대해 배우려면 나는 그것이 내외부에 존재함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내가 공간에 대해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이 여기서 드러난다. ‘내 외부’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내외부에 있는 사물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겠는가? 공간에 대한 지식의 일부는 내가 공간을 경험적으로 연구하기 전에 사실로 상정하고 있어야 한다. 즉 우리는 선험적으로 공간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 논증에는 뜻밖의 결론이 들어있다. 공간 자체는 선험적이므로 세계의 사물에 속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공간 속의 사물을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감성의 특징이다. 그러므로 ‘물자체(物自體 , Das Ding an sich, 감성과 별개라고, 즉 우리 정신의 외부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물을 가리키는 칸트의 용어)’는 공간과 무관할 것이다. 칸트는 이와 비슷한 논증으로 시간도 마찬가지임을 증명했다.

    그런 다음 칸트는 실체 같은 선험적 개념의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 그는 우리에게 우선 변화의 두 유형, 즉 변이와 변경을 구별해보라고 이야기한다. 변이는 사물의 특성과 관련된 것이다. 예컨대 나뭇잎은 녹색일 수도 있고 갈색일 수도 있다. 변경은 나무가 행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하나의 나무가 나뭇잎을 녹색에서 갈색으로 변경한다. 이 둘을 구별한다면 실체 개념을 이미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나무(실체)는 뭔가를 변경하지만 나뭇잎(실체의 특성)은 변이한다. 이 구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우리는 실체 개념의 타당성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럴 경우 우리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변화가 생길 때마다 뭔가가 ‘불쑥’ 나타나거나 사라진다. 이를테면 녹색 잎이 달린 나무가 절멸하는 동시에 갈색 잎이 달린 나무가 무(無)에서 생겨난다. 

    이렇게 생각하기가 불가능함을 칸트는 증명해야 했다. 이 증명의 열쇠는 시간 측정에 있었다. 시간은 사물이 아니므로 직접 경험할 수 없다. 칸트가 앞서 보여주었듯, 우리는 변화하거나 변화하지 않는 사물로 시간을 경험한다. 우리가 녹색 잎의 나무로도 시간을 경험하고 갈색 잎의 나무로도 시간을 경험하는데 두 나무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우리는 별개의 두 실시간을 경험하는 셈이다. 이것이 이치에 맞지 않으므로 칸트는 실체 개념이 있어야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고 믿는다. 우리는 바로 그런 경험으로써 뭔가를 경험적으로 깨달으므로, 실체 개념은 경험적일 리가 없다. 그것은 분명 선험적이다. 

     

    “인간의 관점에서만 우리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이마누엘 칸트

     

    우리가 경험하는 사물보다 정신의 상태나 활동이 앞서며 더 근본적이라고 주장하는 철학 이론을 관념론이라고 부른다. 칸트는 자신의 이론을 ‘선험적 관념론’이라고 일컫는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공간과 시간, 어떤 개념은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칸트는 이를 ‘현상계’라고 부른다”의 특징이지 경험과 무관하다고 여겨지는 세계 자체(칸트는 이를 ‘실재계’라고 부른다)의 특징이 아니다. 

    선험적 지식에 대한 칸트의 주장은 긍정적 결과와 부정적 결과를 모두 낳았다. 긍정적 결과는 공간과 시간, 어떤 개념의 선험적 본질 덕분에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경험이 가능해지고 믿을 만해진다는 것이다. 공간과 시간 덕분에 우리의 경험은 사실상 수학적인 것이 된다. 즉 우리는 그런 경험과 알려진 값을 비교할 수 있다. 실체 같은 선험적 개념 덕분에 우리는 “그것은 실체인가?”, “그것은 어떤 법칙에 따라 어떤 특성을 드러내는가?” 같은 자연에 관한 질문을 다룰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칸트의 선험적 관념론 덕분에 우리의 경험은 과학적으로 유용하다고 여겨질 수 있다. 

    부정적 측면을 보자면, 어떤 유형의 사상은 과학처럼 행세하고 심지어 과학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사실상 기준에 턱없이 못 미친다. 그 까닭은 그런 사상을 내놓는 사람들이 실체 같은 개념이나 공간, 시간에 대한 직관을 물자체에 적용하기 때문이다. 칸트에 따르면, 그런 개념과 직관은 경험에는 유효하나 물자체에는 무효하다. 그런 유형의 사상은 과학과 비슷하기에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에 빠뜨린다. 실제로 무심결에 그 함정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면 우리는 신이 세계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과관계는 또 다른 선험적 개념으로(실체 같은), 칸트에 따르면 우리의 경험계에는 전적으로 유효하나 물자체계에는 무효하다. 그러므로 (경험계와 무관한 존재로 여겨지는) 신의 존재는 우리가 알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이렇게 볼 때 칸트철학의 부정적 결과는 그것이 지식의 한계를 매우 엄격히 규정짓게 되었다는 것이다. 선험적 관념론에서는 나와 외계의 차이를 이해하는 훨씬 근본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내 외부의 존재는 공간 속 나의 외부로 뿐 아니라 공간 자체의 외부로도 해석된다(그것은 결국 시간의 외부는 물론, 내가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하는 모든 선험적 개념의 외부이기도 하다). 그리고 세계는 두 가지다. 하나는 ‘경험의 세계’로, 내 생각과 기분뿐 아니라 내 육체나 책 같은 물체도 포함한다. 다른 하나는 ‘물자체의 세계’로 정확히 경험되지 않으며 따라서 절대 알려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 세계를 오해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이 모든 상황에서 우리 육체는 기묘한 역할을 수행한다. 한편으로 육체는 물체로서 외부세계의 일부다. 다른 한편으로 육체는 우리의 일부이며, 실제로 우리가 (피부, 신경, 눈, 귀 등으로) 다른 사물을 접하는 매체다. 여기서 우리는 육체와 외부세계의 차이를 이해하는 방법을 하나 알게 된다. 육체는 내 감각의 매체로서 외부의 다른 물체와 구별된다. 

     

    “인간의 이성은 떨쳐버릴 수도 대답할 수도 없는 질문에 시달린다.” -이마누엘 칸트

     

    “이성은 자기 방식대로 만들어낸 대상을 통찰할 뿐이다.” -이마누엘 칸트

     

    “프랑스 천문학자 후라마리옹(Flammarion)의 목판화에는 한 남자가 공간과 시간 밖을 내다보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칸트가 생각하기에 우리 외부의 존재는 공간과 시간의 외부이기도 하며, 결코 물자체로서 알려질 수 없다.”

     

    합리론은 인간의 이성이 태어날 때부터 본유관념을 갖고 있으며, 경험은 이성이 본래부터 갖고 있던 지식을 일깨우는 데 머무른다고 본다. 반면 경험론은 모든 지식은 경험을 통해 얻는 것이라 본다. 경험론은 상식에 부합되지만 끝까지 밀고 나가면 보편적 진리를 부정하는 회의주의로 흐르기 쉽다. 같은 것을 놓고서도 ‘나’의 경험과 ‘너’의 경험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고, 같은 것에 대한 나의 경험이라는 것도 때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칸트를 가리켜 합리론과 경험론을 비판하고 종합한 철학자라 일컫는 것은, 그가 인식의 형식(또는 능력)은 본래부터 갖고 있지만 인식의 내용(또는 재로)은 경험으로 얻을 수밖에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경험을 재료(내용)로 삼되, 경험과는 상관없이 타고난 인식 능력(형식)을 통해 보편적 진리를 알 수 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아마도 근세 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책일 것이다. 실제로 현대 사상가들은 대개 철학의 모든 주제를 칸트 이전에 일어난 일과 칸트 이후에 일어난 일로 나눈다. 

    칸트 이전에 존 로크 같은 경험주의자들은 칸트가 말한 ‘감성’을 강조한 반면, 데카르트 같은 합리주의자들은 대부분 ‘오성’을 강조했다. 칸트는 우리의 세계 경험에 항상 감성과 오성이 모두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칸트는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를 종합했다는 평가를 종종 받는다. 

    칸트 이후에는 특히 독일 철학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요한 피히테, 프리드리히 셸링, 게오르크 헤겔 등의 관념론자들은 모두 칸트의 사상을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시켰고, 결국 낭만주의에서 시작해 마르크스주의에 이르는 19세기 사상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형이상학적 사상에 대한 칸트의 정교한 비판은 실증주의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실증주의에서는 타당한 주장이라면 과학적, 논리적으로 증명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칸트가 선험을 세계에 대한 직관에서도 찾아낸다는 사실은 에드문트 후설과 마르틴 하이데거 등의 20세기 현상학자들에게 의미심장했다. 그들은 일반적 선입관에서 벗어나 경험의 대상을 고찰하려고 애썼다. 칸트의 이론은 형이상학과 인식론 같은 분야의 현대 철학자들에게도 중요한 참고기준으로 남아 있다. 

     

    -합리주의: 합리주의자들은 경험이 아니라 이성을 이용하는 덕분에 세계의 사물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경험주의: 경험주의자들은 지식이란 이성이 아니라 세계의 사물에 대한 경험에서 비롯한다고 믿었다. 

    -선험적 관념론: 이마누엘 칸트의 선험적 관념론에서는 세계를 이해하려면 이성과 경험이 모두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022.10.13 - [philosophy/the age of revolution] - ‘인간의 행동은 이기심에서 비롯한다’, 애덤 스미스(서기1723~17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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