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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와 철학(서기1500~1750년)philosophy/the medieval world 2022. 8. 16. 16:19반응형
르네상스와 철학(서기1500~1750년)
-1513년:니콜로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펴낸다.
-1517년: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의 성채교회 정문에 [95개조 논제]를 붙여 종교개혁을 촉발한다.
-1543년: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기독교의 천동설을 부정하며 지동설을 내놓는다.
-1593년:앙리4세가 낭트칙령을 공포하여 가톨릭이 우세하던 프랑스에서 신교도의 권리를 인정한다.
-1620년:프랜시스 베이컨이 [신기관]을 출판해 새로운 자연연구법을 제창한다.
-1633년: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옹호했다는 죄목으로 기독교에서 파문당하고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1641년:르네 테카르트가 [성찰]을 쓴다.
-1644년: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만주족의 청나라가 권력을 잡는다.
-1649년:찰스1세가 처형당함으로써 영국 내전이 끝난다.
-1651년:토머스 홉스가 정치문제를 다룬 역작 [리바이어던]을 출판한다.
-1644년:아이작 뉴턴이 ‘어떤 철학적 문제들’에 대해 노트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1670년:블레즈 파스칼이 죽은 후 [명상록]이 출간된다.
-1690년:존 로크가 [인간오성론]을 펴낸다.
-1704년: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가 [신新인간오성론]을 쓴다.
-1710년:조지 버클리가 [인간 지식의 원리론]을 출판한다.
-1721년:영국의 첫 번재 공장이 문을 열고 산업혁명을 가속화한다.
문예부흥(文藝復興), 혹은 학예 부흥(學藝復興)운동이라고 불리는 르네상스(이탈리아어: Rinascimento, 프랑스어: Renaissance, 영어: Renaissance)운동은 14세기 피렌체에서 시작된 운동이었다. 유럽 특유의 창조성을 되살려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르네상스 운동은, 과학 혁명의 토대가 만들어져 중세를 근세와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해주었다고 여겨진다.
르네상스를 문예부흥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운동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재인식과 재수용을 의미하는 운동이었기 때문이었다. ‘르네상스 시기’라고 하면 구체적으로 14세기에서 시작하여 16세기 말에 유럽에서 일어난 문화, 예술 전반에 걸친 인간 중심(人間中心)의 정신 문화를 가리키는데, 이 점에서 르네상스는 신 중심의 사고에서 인간 중심의 사고로의 전화 즉, ‘패러다임 쉬프트’를 이루어낸 위대한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옛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 사상, 예술을 본받아 되살려낸 것만으로 평가한다면 너무 협소한 평가인 것이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유럽은 르네상스의 시작과 더불어 기나긴 중세시대의 막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유럽 문명은 르네상스를 거쳐서 비로소 근세시대로 접어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의 정신, 혹은 운동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비롯되었지만 알프스를 넘어 유럽의 다른 국가, 즉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독일, 스페인 등지로 퍼져나갔다. 16세기 초 이 운동의 인문주의자들이 종교 개혁의 원동력이 되어 교회 개혁과 학문적 방법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이렇듯 유럽 전역으로 퍼진 르네상스 운동은 17세기까지 이어졌고, 그리스, 로마 고전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의 회복을 가져왔다. 또한 르네상스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신 대신 인간을 중심에 놓고 바라본 운동이었다. 15세기 말엽 르네상스사상이 유럽 전체에 확산되었을 때는 사실상 기독교의 학문 독점을 무색하게 만들었을 정도로 이 운동은 활발하게 퍼져 나갔고, 신 중심의 철학이 사람 중심의 철학으로 변화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에라스뮈스와 토머스 모어 등의 기독교 철학자들이 기독교 내부 논쟁을 불러일으켜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긴 했지만, 이 전까지 순수하게 세속적인 철학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랬던 것이 이 운동이 출현하며 그야말로 ‘게임체인저’가 되어 주었다. 이 새로운 인본주의는 처음에는 예술에, 나중에는 이탈리아의 정치, 사회 구조에까지 반영되었으며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 대거 이루어지며 무역이 번창하는 가운데 피렌체와 베네치아 같은 공화국들이 중세 봉건제도를 버리고 금권정치로 돌아서게 만드는데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
철학에도 르네상스 운동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아니, 이 운동 자체가 본래 철학에 바탕을 둔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렌체 사람인 니콜로 마키아벨리를 ‘최초의 진정한 르네상스 철학자’라고 여기는데, 그의 철학에서는 신학적 학문에서 정치적 학문으로 바뀌는 움직임이 뚜렷이 나타나기 때문이었다.
역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르네상스 운동은 기독교에 엄청난 타격을 입혔다. 이 운동이 기독교의 권위를 실추시킨 결정타는 과학에서 비롯됐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를 필두로 하여 요하네스 케플러와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프톨레마이오스 천동설의 오류를 증명함으로써 수세기에 걸친 기독교 교리를 뒤집었고, 기독교는 이에 반격했다. 결국 갈릴레이를 이단으로 몰아 투옥하기에 이르렀지만 이는 명백히 천문학 발전과 과학 전반의 진보를 이루 하나의 거대한 사건이었다. 르네상스 운동으로 인해 과학은 우주의 원리에 대한 대안적 설명을 내놓는 한편, 새로운 철학의 토대를 마련했던 것이다.
기독교 교리에 맞선 합리적, 과학적 발견의 승리는 17세기 사상의 축도라고 할 수 있다. 프랜시스 베이컨과 토머스 홉스를 비롯한 영국 철학자들은 과학적 추론과 철학적 추론을 통합하는 데 앞장섰다. 이 시기는 이른바 ‘이성의 시대’의 여명기로 위대한 ‘근대’ 철학자들을 처음 낳았고,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에서 기원하는 철학과 과학의 관계, 특히 철학과 수학의 관계를 회복했다.
17세기 유럽의 주요 철학자들 중 상당수는 뛰어난 수학자이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르네 데카르트와 블레즈 파스칼이, 독일에서는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가 수학 발전에 이바지했다. 그들은 우리가 세계에 대해 어떤 지식을 얻고자 하든지 간에 수학의 추론방법이 최상의 본보기가 된다고 믿었다. 데카르트는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연구하던 끝에 합리주의라는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합리주의는 오직 이성에서만 지식이 비롯한다는 신념으로, 다음 한 세기 동안 유럽대륙을 지배했다.
한편 같은 시기에 영국에서는 이와 사뭇 다른 철학 전통이 확립되었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옹호한 과학적 추론을 추구하던 존 로크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이성이 아니라 경험에서 비롯한다고 결론지었다. 경험주의로 알려진 이 견해는 17세기와 18세기 내내 영국 철학을 특징지었다.
유럽대륙의 합리주의와 영국의 경험주의는 둘의 분열에도 불구하고(같은 분열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갈리기도 했다) 인간을 중심에 두었다는 점에서는 일치했다. 지식을 낳는 이성과 경험의 주체는 바로 그 인간이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영국해협을 사이에 둔 양측 철학자들은 모두 우주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아이작 뉴턴 같은 과학자들이 대답한 질문)에서 출발해, 우리가 지식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으로 나아갔고, 결국 인간정신 및 자아의 본질을 탐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새로운 철학적 입장에는 도덕적, 정치적 함의가 담겨 있었다. 마치 교회의 권위가 르네상스사상 때문에 흔들렸듯, 귀족정치와 군주정치도 계몽주의라는 신사상의 위협을 받았던 것이다.
예전의 통치자들이 권좌에서 쫓겨난 후에는 어떤 형태의 사회가 그들을 대신했을까? 영국에서는 홉스와 로크가 격동의 17세기 내내 민주적 사고의 기반을 다졌지만, 다른 나라에서 현 체제에 대한 의문을 본격적으로 제기한 것은 그로부터 100년이 더 지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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