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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은 세상을 영원히 존재한 것처럼 창조했다, 토마스 아퀴나스(서기 1225~1274년경)
    philosophy/the medieval world 2022. 8. 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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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은 세상을 영원히 존재한 것처럼 창조했다, 토마스 아퀴나스(서기 1225~1274년경)

    Thomas Aquinas,AD1225~1274
    Thomas Aquinas,AD1225~1274

    도미니코회 수사신부로서 중세 기독교의 대표적 신학자이자 스콜라 철학자이기도 했던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년에 남부 이탈리아 반도와 시칠리아 섬에 걸쳐 있던 시칠리아 왕국(현 중남부 이탈리아 반도의 라치오주 프로시노네도) 북부 로카세카(Roccasecca)에서 아퀴노(Aquino)의 영주였던 란돌포 다퀴노(Landolfo d'Aquino)와 테오도라 갈루초(Teodora Galluccio) 부부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란돌프 다퀴노는 그를 수도원장으로 키우고 싶어 했다. 그 바람에 따라 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베네딕토회 몬테카시노 수도원으로 보내진 그는 그곳에서 수도사 수업을 받게 된다. 이후 8년에서 9년 정도의 정식 수도사 수업을 받고 난 토마스 아퀴나스는 정치적 혼란 상황때문에 더이상 수도사 수업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그곳을 나온 뒤 당시 프레데리쿠스 2세의 후원으로 성장일로에 있던 나폴리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나폴리대학에서 당시의 7개의 필수 학문인 문법, 논리학, 수사학, 대수학, 기하학, 음악, 천문학을 공부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후 베니딕트 수도회에 입문하길 바라는 가족의 바람과는 반대로 도미니크 수도회(Dominican oder, 매우 높은 지성을 갖춘 수도사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수도회)에 들어갔다. 역사학자들은 그가 아마도 대학에서 도미니크 수도회의 수도사들을 만났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것이 매우 독특한 행보였기 때문이다. 

    도미니크 수도회에 들어간 그는 수도사 수련기간에 파리에서 공부를 했다. 그런 다음 퀼른(Cologne)에서 독일의 아리스토텔레스학파 신학자인 대학자 알베르투스(Albert the Great)의 지도를 받았다. 이후 다시 파리로 돌아간 아퀴나스는 신학교수가 되었고, 10년 동안 이탈리아를 돌아다니면서 강연을 했다. 이후 다시 파리로 돌아와 교수로 재임된 그는 1273년 어떤 계시를 받아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그가 지금까지 행한 모든 것은 한낱 지푸라기에 불과하다고 말한 뒤 다시는 저술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1323년 가톨릭교회에서 성자로 인정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기독교 교리와 아리스토텔레스(참조:https://sikguy.tistory.com/15)의 철학을 종합하여 스콜라 철학을 대성한 중세 기독교 최대의 신학자였다.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을 완성시킨다"는 태도를 갖고 은총과 자연, 신앙과 이성 사이에 조화로운 통일을 부여했던 그는 인간이 자연 전체에 대한 이해를 통해 신의 존재를 추론(推論)하는 것은 신을 찬미하는 길이라고 믿었던 사람이었다. 

    아퀴나스의 사상에서 핵심적인 인물은, 중세 사상가들에게 그 업적이 집중적으로 연구되었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는 늘 존재했고, 그 영원한 우주가 바위 같은 무생물에서 사람, , 말등의 생물에 이르는 모든 것의 근원지라고 확신했던 사람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한 우주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움직이며, 이는 오직 변화와 운동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세의 유대교와 기독교 사상가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6세기 그리스의 기독교 작가 존 필로포누스(John Philoponus)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분명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논거를 찾아내 우주가 항상 존재한 것이 아님을 확신하기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무한성은 한계가 없다. 예를 들어 각각의 수에는 보다 높은 다른 수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수의 순서는 무한하다. 우주도 마찬가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잠재적 무한이라고 이야기했다. 각각의 날들이 동시에 공존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무한한 수의 사물들이 모두 동시에 존재하는 실제적 무한은 불가능하다. 

    필로포누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이 주장의 헛점을 찾아내 공격했다. 필로포누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이 사실이라면 소크라테스가 태어났을 때까지 인간들은 이미 무한한 수로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이제 소크라테스의 시대 이후 훨씬 더 많은 인간들이 태어났고, 그에 따라 인간의 수는 이제 무한대보다 더 많을 때까지 늘어나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어떤 수도 무한대보다 더 클 수는 없다.  

    논리의 헛점은 또 있었다. 만일 이 주장이 사실이고 무한한 수의 인간들이 이미 존재한다면, 이제는 분명 무한한 수의 인간의 영혼이 존재해야 한다. 따라서 잠재적 무한이 아니라 영혼의 실제적 무한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제적 무한은 불가능하다고 했던 것이다. 

    이런 논리로 필로포누스와 그 추종자들은 우주는 항상 존재했을 리가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확신했다. 그들에 의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은 틀렸고, 우주는 영원한 것이 아니므로 이는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기독교 교리에 완벽히 들어맞는다. 

    아퀴나스는 이 두 가지 주장을 다 융합하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우주는 영원히 존재했을 것이지만 인간이나 동물과 같은 종들은 하나의 시작점에서 생겨났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증을 옹호하면서도 기독교의 교리에 위배되기 때문에 우주가 영원하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필로포누스와 그 추종자들처럼 우주가 하나의 시작점에서 생겼다는 것도 맞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증에 결점이 없다는 것도 입증하고 싶어 했던 그는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우주는 항상 존재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이 사실상 정말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입증하기로 했다. 

    아퀴나스는 성서에 언급되듯이, 우주는 하나의 시작점에서 생겨난 것이 사실일지라도 이는 어떤 논리적인 근거에 필요한(명백한) 진리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필로포누스와 그 추종자들의 관점에서 벗어났다. 아퀴나스에 따르면 신은 하나의 시작점으로 우주를 창조했지만 아주 편리하게 영원히 존재한 것처럼 창조했다. 만일 어떤 것이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면 그것이 존재하게 된 것은 신 덕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따라서 신이 창조한 영원한 우주라고 믿는 것은 전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무슨 소린지 아리송하게 들리는 이 말을 아퀴나스는 한 가지 예를 들어 설명했다. 만약 누군가 모래 위에 발자국을 남겼다고 치자. 이 때의 모래는 창조 전 세상이고, 발자국은 세상이다. 그리고 발은 바로 신을 나타낸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아퀴나스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가 명확해 진다. 모래 위에 새겨진 발자국은 아주 오랫동안 그곳에 존재했다. 때문에 그 발자국이 만들어지기 직전의 순간은 남아있지 않다. 신은 모래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모래발자국을 찾조했다는 이 논리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 영원론이나 우주를 신이 창조했다는 이론이나 다 융합할 수 있다. 그렇게 따지만 우주가 무엇이냐에 따른 논란을 피할 수가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여전히 그 발을 발자국의 원인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 발 즉, 신이 없었다면 발자국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가들은 아퀴나스가 자신이 원하는 각각의 요소들을 골라 모두 부드럽게 함께 섞듯이 기독교사상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통합했다고 말하곤 한다. 대부분의 기독교도들과 마찬가지로 아퀴나스에게도 교회의 가르침은 예외나 타협 없이 모두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이었지만 그는 특이하게도, 제대로 이해되기만 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기독교의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여겼다. 우주가 항상 존재했는지에 대한 문제는 그 예외 중 하나였다.   이 특별한 경우에서,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이 잘못되었지만 원칙이나 추론에서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대 철학자들이 알기로는 우주는 정말 영원히 존재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독교의 교리를 접해볼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낼 길이 전혀 없었을 뿐이다. 

    아퀴나스는 기독교에는 고대 철학자들이 알지 못하고 알 리가 없었던 교리들이 많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퀴나스의 견해로 볼 때, 인간은 올바르게 추론할 때마다 기독교의 교리를 반박하는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 이는 인간의 이성과 기독교의 가르침이 신이라는 똑같은 근원에서 생겨나므로 서로 모순될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2022.06.14 - [philosophy/the ancient world] - ‘모든 이해는 감각에서 시작된다(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384~3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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